사건사고

9살소녀를 9년2개월동안 감금한 충격적 이유

na.rin 2022. 6. 1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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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소녀를 9년2개월동안 감금한 충격적 이유

 

2000년 1월 28일

일본 니가타현 가시와자키시에 위치한 2층 주택에 7명의 남성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보건소 직원들과 정신병원의사 및 병원 관계자들로 2층에 거주하고 있는 사토 노부유키라는 남성을 데려가기 위해 온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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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는 어머니와 아들인 사토 둘이 살고 있었는데 몇 년 동안 아들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어머니가 신고했던 것.

사토의 으름장에 10년이 넘게 올라가 본적이 없었다는 2층 사람들은 2층으로 올라갈수록 역겨운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다.

방문을 열었을 때 사람들과 마주친 사토는 난동을 부렸지만 그들의 손을 뿌리치지는 못햇고 그는 당시 이제 끝이다!잘 되고 있었는데!라는 이상한 소리를 했다고 한다.

사토의 말에 이상함을 느끼고 있던 보건소 직원은 침대위의 담요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놀랐고 그는 조심히 담요를 들춰냈고 9년 2개월 전에 실종된 소녀를 발견했다.

1962년 7월 15일

택시회사 임원인 아버지와 보험 판매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토.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거진 30살 가까이 나이 차가 나던 부부였는데 늙은 나이에 사토를 얻은 아버지는 그를 매우 아꼈다고 한다.

부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주위가 불결하게 생각돼 접촉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불결공포증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토는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70대 중반이 된 아버지를 지저분하다 여기며 멀리했고 그런 감정은 어느새 혐오로 바껴 그는 아버지에게 폭력을 휘두르게 되었는데 아버지 뿐만 아니라 말리는 어머니도 사토의 폭력에서 피해갈순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그는 학교에서 눈에 띄는 존재는 아니었지만 집에서 부모에게 보여주던 모습과는 달리 나긋한 느낌이라 반 친구들은 그를 오카마(성소수자를 지칭하는 단어)라 놀렸고 사토는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부모님에게 풀곤 했다.

 

졸업한 뒤 작은회사에 취직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몇 달 만에 퇴직하는 등 자기중심적이고 나태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 무렵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노인 돌봄시설로 들어갔고 그때부터 사토는 어머니와 단둘이살며 아무일도 하지 않았다.

2층에 있는 방에 틀어박혀 어머니의 출입마저 거부한 채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살았던 사토.

1989년 6월

그는 하교중인 한 소녀에게 접근해 치근거렸고 이를 목격한 다른 학생이 학교에 달리며 외설 미수 혐의로 체포된다.

그렇게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의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형이 확정됏음에도 불구하고 성범죄자 목록에 등록되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등록누락. 일본은 지금도 아날로그식으로 서류를 처리하는 곳이 많아 실수로 그의 이름이 누락되었던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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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유예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사토는 반성하지 않도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다.

1990년 11월 13일

차를 몰고 가시와자키시 북동쪽에 위치한 신조시로 간 사토는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던 소녀를 발견했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흉기로 소녀를 위협해 차에 태운 뒤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

어머니에게 들키지 않게 2층으로 올라간 뒤 납치된 이들이 살해된 사건들을 말하며 그는 자기말을 따르며 그리되지않을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소녀의 부모는 딸리 실종됐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많은 이들이 동원돼 신조시 일대를 수색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만약 사토가 성범죄자 명단에 등록됏따면 소녀의 실종사건에 관해 그는 용의자 중 한명으로 선정됐을 것이고 그러면 좀 더 일찍 범행이 발각됐을 테지만 그의 이름은 누락된 상태라 경찰은 대책본부를 꾸리고 다른 용의자들을 선정하는 등 헛물을 켜고 있었다.

 

처음 감금된 소녀는 구석된 상태였지만 며칠 뒤 사토를 구속을 풀어주었고 여러방법을 동원해 탈출하지 못하게 의지를 상실시켰다.

나중에는 전기 충격까지 동원됐는데 사토는 이를 어머니에게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소녀는 사토가 자신을 때리면 맞는것은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이는 한 사람 안에 둘 또는 그 이상의 인격이 존재하는 해리성 장애증상이였고 보호본능으로 발생한 증상이었으나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소녀는 9년이 넘는 시간을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2층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두려워해 매일 정처 없이 밖에서 돌아다니다 저녁 늦게 왔기에 전혀 몰랐다고 했다.

 

1996년

사토의 폭력성이 짙어져 어머니는 보건소에 상담했고 보건소 직원은 가정방문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아들을 자극할지 몰라 어머니는 정신과 약을 처방받는것으로 만족했지만 2000년 초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의료보호입원에 동의하며 그 해 1월 28일 보건소직원과 정신병원 관계자들이 그의 집에 방문했고 감금되있던 소녀를 발견한 것이다.

그렇게 소녀는 9년 2개월만에 지옥을 벗어나 가족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왜 그런 범행을 저질렀냐는 질문에 말벗이 필요했다고 말했던 사토는 자신이 좋아하는 경마와 자동차에 관해 소녀와 대화하는 것을 즐겼고 신문이나 TV를 보여주거나 초등교육과정의 일부를 가르치기도 했다.

실제로 구조된 소녀는 지식과 어휘에선 눈에 띄는 저하를 찾아 볼수없었다고 하지만 문제는 운동을 금지했기에 근육이 줄어 혼자 걸을 수 없었다는 것

게다가 그는 하루에 1번 편의점도시락만 주었을 뿐 그밖에 음식은 주지 않아 구출당시 소녀의 몸무게는 겨우 38kg이었다.

 

2002년 1월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피해자가 상상을 초월할 고통을 받았고 재범의 우려가 높다고 말하며 징역 14년을 선고했고 사토의 변호사는 그가 강박장애, 인격장애를 갖고 있고 범행 당시 심신모약상태였다며 항소했지만

2003년 8월에 최고 재판소는 그가 집행유예 상태에서 범행을 또 저지른 점을 지적, 항소를 기각하며 제 1심선고를 지지했다.

구류 기간을 형량에 넣지 않아 2015년이 나서야 출소한 그는 지바현에서 생활보장(장애등급인정)을 받으며 혼자 생활하다 2017년에 집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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