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보호시설 보호종료된 아이들의 자립

na.rin 2022. 9. 8. 13:58
728x90
반응형
SMALL

 

오하은(가명·22)씨는 지난해 10월 보호시설에서 나와 자립했다. 성인이 돼 홀로서기에 나서기 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개명 신청이었다. 주변에는 “이름으로 놀림을 받아서”라고 말했지만, 사실 이름을 바꾸려는 진짜 이유는 다름 아닌 가족 때문이었다.

 

오씨가 시설에서 나온 지난해 새아빠는 교도소에서 출소했다. 12살 때 처음 만난 새아빠는 상습적으로 오씨를 성폭행했다. 뒤늦게 이런 사실을 눈치챈 건 그의 담임교사였다. 이후 오씨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보육시설 생활을 시작했다. 성폭행 혐의로 형이 확정된 새아빠는 수감됐다.

728x90

“혹시 누가 묻더라도 저는 계속 이 시설에서 지낸다고 해주세요.” 시설을 나서던 오씨는 마지막으로 원장에게 부탁했다. 친엄마 역시 오씨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었다. 친모는 계부의 성폭행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고 한다. 새아빠와 전처 사이에 낳은 아이를 학대한 혐의로 감옥에 다녀온 전력도 있는 친모는 그에게 짐일 뿐이었다. 엄마는 오히려 이제 막 20대에 들어선 오씨에게 종종 전화를 걸어 “돈 좀 있냐”며 도움을 요청하는 처지다. 그는 ‘차라리 부모 없는 고아가 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몇 년간 지낸 시설은 오씨에게 사실상의 마지막 보호막이었다. 시설에서 지낼 땐 상황을 아는 시설 관계자들이 친모로부터의 연락을 거절하거나, 접촉하지 못하도록 도움을 줬다. 하지만 학대받은 아동의 경우에도 성인이 돼 홀로서기에 나서는 때부터 시설에서 개입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오씨는 만 18세가 된 이후 한 차례 보호연장을 신청해 시설에 머물렀다. 하지만 언제까지 숨어있을 수는 없었다. 어차피 만 24세가 되면 시설 밖에서 자립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씨는 용기를 내 조금 일찍 도전하기로 했다. 이름을 바꿔 가족들이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겠다고 결심했다. 오씨를 보호하고 있던 시설 관계자는 7일 “여전히 하은이 엄마는 도움이 필요하면 시설로 연락하는데, 아직까지 하은이가 여기서 지내는 줄 안다”며 “하은이가 시설을 떠나던 날 ‘안 좋은 인연은 끊어내는 것도 좋다’고 말해줬더니 아이가 공감하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SMALL

오씨 사례처럼 자립준비청년에게 오히려 가족이 짐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아동학대나 방임 등으로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보호시설에 보내졌다가 자립하는 이들에게 그렇다.

 

자립준비청년 강영아(22)씨도 올해 초 달갑지 않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시설로부터 “아버지가 연락해 온다”는 전화를 받은 것이다. 여러 시설 밖 청년들은 부모에게 원치 않는 연락이 걸려오는 순간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어릴 적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부모로부터 이들을 보호해줄 곳이 사라진 처지기 때문이다.

 

10년 전쯤 13세이던 강씨는 두 살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아버지를 피해 무작정 도망쳐 나왔다. 함께 살던 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건 부모님의 이혼 때문이었다. 부모의 이혼 재판에서 아버지가 미리 시켰던 대로 말했는데, 이 증언이 어머니에게 불리하게 작용해 아버지가 양육권을 갖는 결과로 이어질 줄 당시엔 몰랐다고 한다.

 

부모의 이혼 이후 아버지를 따라 강씨와 동생은 영문도 모르는 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녀야 했다. 모텔과 찜질방을 전전했고, 학교조차 가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언제 도망갈 수 있을까’를 매일 고민하던 날이었어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던 그날도 강씨와 동생은 아버지와 함께 찜질방에 있었다. 아버지가 낮잠을 자는 틈을 타 동생의 손을 잡고 무작정 달렸다. 그리고 보호시설에 입소했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가 강씨가 지내는 시설을 알아내 직접 찾아온 일도 있다. 그는 “시설에서 지내고 싶다고 말해 아버지와는 떨어져 지내게 됐지만, 늘 불안했고 (길에서) 마주칠까봐 무섭기도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시설에서 나와 강씨를 보호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지금, 아버지는 여전히 시설을 통해 “딸에게 용돈을 주고 싶다”며 접촉을 시도한다. 이에 강씨는 “아직은 아버지를 만나고 싶지 않다”며 거부하는 상황이다. 그는 “우리를 키워주신 아빠를 혼자 두고 떠난다는 게 마음에 걸리기도 했지만, 다시 같이 살기보다는 내 삶을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

 

한 보호시설 관계자는 “부모의 학대로 시설에 온 아이들은 부모가 찾아와도 ‘아이와 만나게 해줄 수 없다’고 안내하고 경찰이 아이와의 만남 여부를 결정하도록 조치하지만, 성인이 되면 사실상 개입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부모의 외면으로 시설에 보내졌다가 성인이 된 이에게 정착금을 노리고 다시 연락하는 부모도 있다. 최정훈(가명·22)씨는 돈 한 푼 없이 자립청년이 됐다. 서울역과 인천 등지에서 노숙하는 건 일상이었다. 일용직 택배 상하차 일을 구했지만, 어린 시절 학대로 심리적 불안정 상태였던 최씨는 그마저도 지속하기 어려웠다.


그가 빈털터리로 사회에 내던져진 건 부모 때문이었다. 만 18세에 시설에서 퇴소했지만 친모는 “먹여주고 키워준 값으로 생각하라”며 최씨에게 지급된 자립정착금 500만원과 후원금 300만원 등 800만원을 모조리 가져갔다.

 

김주하 보호종료아동을 위한 커뮤니티케어센터 국장은 “부모와의 문제로 시설에 들어온 아동일수록 주변에 도와줄 어른이 없는 편”이라며 “잘못된 주변 정보에 더 잘 휘둘릴 수 있고 자립에도 어려움을 겪을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