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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독서 94

엄마. 나는 무서워요,블루 노트

지독한 외로움이 이어졌다. 방문 틈으로 엄마가 챙겨보는 TV프로그램 소리가 뒤따라왔다. 틈틈이 활기찬 음악과 재미있는 효과음이 들렸고, 이따금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어쩜 우리의 매일매일이 그렇게 특별하리라는 듯. 엄마. 나는 무서워요. 이제는 무서워서 방문은 커녕 이불 밖으로도 나갈 자신이 없어요. 깜빡 잠이 들었다가 덜컥 내일이 찾아오는 게 두려워요. 다시 또 펼쳐질 별 볼일 없는 하루와, 꼭 그만큼 더 잃어가는 젊음을 마주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잠을 못 자나 봐요. 블루 노트(이묵돌 단편선 2) 한 순간 한 순간은 별 볼 일 없었지만, 모아 놓고 보면 분명히 작게 빛나는 것이 있다. 지금은 너무도 우울하고, 창백하고, 시퍼렇게만 보이는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 하나 둘 잊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하루독서 2022.11.07

애정 결핍자들은 안다,내가 말하고 있잖아

애정 결핍자들은 안다. 우리는 끌려다닌다. 다정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녹고 부드러운 눈빛과 목소리에 입은 벌어진다. 물을 향해 필사적으로 기어가는 새끼 거북이들처럼 무모하고 일방적이다. 가는 수밖에 없다. 끌려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다 보면 망하는 것은 내 쪽. 구겨지는 건 내 마음뿐. 끌어 당기는 쪽은 죄가 없다. 허락 없이 마음을 연 사람만 바보지. 그리하여 나는 지금. 이 순간. 정신을 차리려 하는 것이다. 곰처럼 커다란 남자가 두툼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작은 손이 커다란 손에 꿀꺽 삼켜졌다. 내가 말하고 있잖아 정용준 장편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내가 말하고 있잖아』는 열네 살 소년이 언어 교정원에 다니며 언어적, 심리적 장애를 ..

하루독서 2022.11.07

나 죽을 때 손 잡아 줘,그리고 당신의 애인

나 죽을 때 손 잡아 줘 이불도 덮어주고 머리도 한 번만 쓸어넘겨 줘 질질 짜는 얼굴 보기 싫은데 혹시라도 감정이 북받치면 우는 건 나 죽고 나서 해 줘 언젠가의 너는 내 죽겠단 소리에 다시 한 번만 그런 소리를 지껄이면 영원히 저주해버릴 거라고 했다 그때 네가 쏟아놓듯 죽지 마 했던 게 나는 계속 피부 아래 방치된 작은 유리 조각처럼 따끔거리고 아팠다 아주 멀리 가 버려서 이제 사진 없이는 얼굴도 제대로 떠올릴 수도 없다는 점에서 너는 멋대로 죽어버린 사람들과 많이 닮았지 시퍼렇게 살아있는 사람 그렇게 취급해서 미안해 이렇게라도 가슴에 묻지 않으면 너무 많이 사랑해버릴까 봐 그래 그리고 당신의 애인(검은펜 시리즈 3 문장집) 태주의 언어는 차분하고 결이 곱다. 언뜻 수줍어하는 볼우물 같기도 하고, 곁에..

하루독서 2022.10.20

빛은 빛이었음에도 얼지 않는 바다에게 겨울은 겨울이었듯,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

아닌 척할 뿐 누구나 졸렬하죠 이따금 얼굴을 벗고 습관 같은 표정이나 언어로 하루를 덮어써요 세계를 속이거나 나를 속이는 일은 너무 쉽죠 진실은 늘, 무너질 즈음 해제되고요 ​ 늦었던 나는 내가 아니었을까요 바다는 얼지 않았기 때문에 떨지 않았을까요 날지 못하는 새는새가 아닌지 묻지 마세요 밤을 지키세요 질문들로부터 오답 목록을 들고 대기하는 사람으로부터 근무처럼 변해가는 삶 길게 배설되는 욕망으로부터. 잠식된 시간 사장된 말들 위해 소리치세요 의구의 파도를 지우고 낡은 독백은 아껴두세요 미비했던 나 때문에 자꾸 졸렬해지지 마세요 들리지 않는 날갯짓이 예고하는 선을 고대하세요 ​ 빛이 늘 빛이어서 날지 못하는 새도 새였으나 ​ 빛은 빛이었음에도 얼지 않는 바다에게 겨울은 겨울이었듯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하루독서 2022.10.19

내 사랑도 보기 좋게 망쳐서 밤마다 이불 뒤집어쓰고 우는데,그리고 당신의 애인

모든 이별은 어딘가 슬픈 구석이 있기 마련이어서 이별에 관해서는 유난히 낭설이 많지. 나는 한동안 이별 앞에서는 누구도 담담할 수 없다는 말을 미신처럼 소매 안쪽 깊은 곳에 넣어두고 다녔다. 정형화된 변명들을 되새기다 보면 비웃길 정도로 떠오르는 괜찮다는 말들, 그리고 전혀 괜찮지 않았던 마음들. '인연이라면 다시 만나겠지'라는 말은 운명이 도와주지 않는 한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은 영영 없을 거라는 뜻이다. 내가 무슨 수로 사랑을 운운해. 내 사랑도 보기 좋게 망쳐서 밤마다 이불 뒤집어쓰고 우는데. 그리고 당신의 애인(검은펜 시리즈 3 문장집) 태주의 언어는 차분하고 결이 곱다. 언뜻 수줍어하는 볼우물 같기도 하고, 곁에서 귓가에 조근조근 속삭이는 애인의 목소리 같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슬픔으로 물든 눈..

하루독서 2022.10.17

내가 잠든 척하면 당신은 떠나겠지, 말할 수 없는 애인

아가리를 벌린 진열대 생선처럼 난 눈이 안 떠지네 내 심장과 배를 훑고 귀를 기울이다 냄새를 맡아 내가 잠든 척하면 당신은 떠나겠지 아예 잠들면 당신은 떠나겠지 또다시 당신의 노래는 나를 흔드네 날 흔들어 심지어 지금에 와서도 절고 축축한 매트리스에 무릎 꿇고 내 이마를 쓰다듬지 당신의 노래는 머리맡에 죽은 쥐 그 배 속에 우글거리는 슈거볼같은 거 귓속으로 밀려와 내 심장과 배를 훑고 허리를 잡고 뇌로 올라와 오 나의 사랑 이제 그만 쉬어라 난 온종일 가물가물 수면에서 수면으로 흘러가는 매트리스 당신의 코러스가 내게 귀를 기울이지 당신들의 노래 모두 한 입술로 다시 해봐 잘될 거야 토닥토닥 내 발아래에서 머리 끝으로 애무하듯 끌어올리는 이 지퍼 당신의 코러스 말할 수 없는 애인(문학과지성 시인선 391)..

하루독서 2022.10.14

이제는 내려놓고 싶은데,참 소중한 너라서

지금 내 마음에 응어리가 진 것처럼 누군가가 자꾸 밉고 싫은데, 그 미운 생각에 사로잡혀 내 하루의 행복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 같아. 이제는 내려놓고 싶은데, 그게 내 맘처럼 잘 안되서 속상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너에게. 탓하고 원망하는 생각에 가득 차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그래서 스스로가 불행하다고 느낄 수 있는 건 이미 아주 좋은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부정적인 사고와 완전히 하나가 되어 그 생각에 휘둘림을 당할때는 그 생각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할테니까요. 그래서 그 생각을 스스로 바라볼 줄 안다는 건 그 감정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미 내 마음안에 소유하게 되었다는 거니까요. 그러니 우리, 천천히 잘 해내 보기로 해요. 가장 먼저, 탓하고 원망하는 것 또한 내 선택..

하루독서 2022.10.14

애매한 관계 속에서 그 사람의 연락을 기다릴 때,당신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줄게요

누가를 좋아하면서 언제가 가장 힘들었어? 혼자 애매한 관계 속에서 그 사람의 연락을 기다릴 때. 먼저 연락을 보내자니 나만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상대방은 그런 나를 귀찮아하며 가볍게 볼까 봐 애서 참곤 했어. 그렇다고 연락을 기다리자니 이대로 연락이 끝나버릴까 봐 겁이 났어. 그 사람에게 대놓고 마음을 물어볼 용기도 없기에 그저 이런 기다림 속에서 혼자 아파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너무 힘들었어. 그건 네가 너무 생각이 많아서 그래. 너는 그냥 네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돼. 괜히 상대방의 마음까지 헤아리며 행동하느라, 너 자신의 마음에는 조금 소홀했던 것 같아. 당신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줄게요 출간 전부터 이미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화제의 작가 권글의 첫 번째 에세이. 지난 4년 6개월간..

하루독서 2022.10.13

남을 덜 미워해야겠다고 다짐했더니,막강 욕설

남을 덜 미워해야겠다고 다짐했더니 정신에 병이 들더라 안 맞는 옷 억지로 입으려고 하지 말어 차라리 실컷 미워하고 지랄해 그렇게 엿 먹이고 나면 적어도 저녁밥 소화 안돼서 새벽에 벌떡벌떡 깨는 일은 없더라 지랄은 체력 후달려서 못하겠고 저주만 한다 누군가를 건강하고 올바르게 미워하는 지침서가 나온다면 꼭 사야겠다 그리고 당신 내가 괜찮아졌을 거란 생각을 하셨다면 앞으로 내내 엿 같은 생을 보내시길 I made up my mind to hate others less, and I became mentally ill Don't try to force yourself to wear clothes that don't fit you. You'd rather hate it as much as you want Afte..

하루독서 2022.10.12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까,서서히 서서히 그러나 반드시

계절에서 기다릴게 오뉴월에 눈이 내리면 그때는 우리,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까. 결국에 나는 완연한 봄날이었는데 너는 흩날리는 가을 낙엽이었던 거지. 그러니까 서로에게 마음이 없었다기보다는 각자가 속한 상황이 달랐던 거야. 때로는 지나치고 나서야 깨닫는 것들이 있잖아.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알맞은 시간이 찾아올까. 그때는 우리 미련하게 하고픈 말을 삼키며 돌아서지는 말자. 계절에서 기다릴게. 계절에서 기다릴게 사랑을 말하는 남자 김민준과 일상을 그리는 여자 최예지의 사랑 에세이『계절에서 기다릴게』. 총 4개의 부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가 말하듯 “세상에 존재하는 3천개의 언어”로도 표현 못할 다양한 사랑의 감정들, 잘하고 싶지만 잘되지 않는 관계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불확실한 미래를 앞두고 삶의 불..

하루독서 2022.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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