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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영웅들의 '아덴만 여명작전'

na.rin 2022. 9. 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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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인질을 구출하라 : 해적과의 일주일'라는 부제로 '아덴만 여명작전'의 그날을 이야기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 2
 
시간
목 오후 10:30 (2021-03-11~)
출연
장도연, 장성규, 장항준
채널
SBS

지난 2011년 1월 15일 대형 화물선 삼호주얼리호는 이란에서 스리랑카로 가는 중이었다. 평화로운 오전 일과를 보내던 중 비상벨이 울렸고, 일등 항해사는 선장에게 해적의 침입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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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 해적들은 순식간에 배에 올라탔고, 이에 21명의 선원들은 급히 대피소로 이동했다.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한 해적들은 배의 엔진을 꺼버렸고 대피한 선원들을 위협하며 그들을 찾았다.

 

이산화 탱크 방의 탱크 뒤에 숨어있던 선원들은 안전을 위해 항복했다. 해적들은 선원들을 인질로 붙잡고 이들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에 환호하는 해적들. 협상금을 노리는 해적들에게 우리나라 선박은 너무나 좋은 희생양이었던 것. 특히 불가 한 달 전 삼호드림호가 협상금을 100억 원 내놓은 것을 알고 있던 해적들은 많은 협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쾌재를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삼호주얼리호의 납치 소식은 바로 정부에 알려졌다. 대통령의 주도하에 열린 긴급회의에서 해적을 제압하고 인질을 구출하는 강공 작전이 결정됐다. 이에 당국은 피랍 현장으로 청해부대를 즉시 투입했다.

 

청해부대는 소말리아 해역 호송전대로 당시 최정예 대원 300여 명이 타고 있던 최영함이 근처에 있었다. 하지만 꼬박 이틀을 달려야 주얼리호를 잡을 수 있었고 조금도 지체할 수 없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주얼리호의 선장님은 해적들의 눈을 피해 몰래 해군에 메일을 보내 상황을 알렸다. 그러자 해군은 최영함이 도착할 때까지 최대한 소말리아로 향하는 것을 늦춰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선장님은 해적들에게 엔진이 고장 났다고 거짓말을 했고, 이를 믿지 않는 해적들에게 "엔진을 누가 정지시켰냐. 너희가 조작을 잘못해서 고장이 났다"라며 "못 믿겠으면 직접 테스트해봐라. 내가 없으면 이 배는 못 움직이니 쏘고 싶으면 쏘라"라고 했다.

해적들은 결국 한 발 물러섰고 선장님은 계획대로 최대한 항해를 지연시켰다. 그 시각 최영함에 승선한 300명 중 30명의 UDT 특수부대 대원들이 구출 작전을 준비했다.

 

해적들은 구출 작전을 눈치챘고 백기를 들고 대원들을 유인했다. 그리고 바로 대원들에게 총격을 퍼부었고, 이에 구출 작전에 참여한 대원들이 총상을 입게 됐다. 특히 가장 크게 다친 것은 선두에 섰던 대장님. 대장님은 긴급 수술에 들어갔고 그는 "작전을 끝까지 해내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말을 전했다. 이에 남은 대원들은 "해적을 쓸어버리자"라는 전의에 불타올랐다.

 

그리고 아덴만 여명 작전에 돌입한다. 목숨을 내 건 구출 작전에 대원들은 유서까지 쓰며 각오를 다졌다. 특히 이 작전의 리더였던 김규환 대위는 파병 전 아내의 유산이 오히려 잘 된 일이라 여겼다. 본인이 잘못되었을 경우 아내가 부담 없이 새 출발이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그렇게 대원들은 마지막에 마지막을 생각하며 작전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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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 여명 작전의 구출 작전 신호는 부산 갈매기. 대원들은 부산 갈매기를 틀고 경고 방송 후 곧바로 작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피랍 6일 만에 21명의 선원 모두를 구출했다. 그런데 이때 주얼리호의 선장님은 큰 부상을 당해 쓰러졌다. 구출 작전 시작과 함께 흥분한 해적들이 선장을 찾아 총격을 가했던 것.

 

의식이 없고 출혈이 심한 선장님의 상태를 보고 김규환 대위는 고민에 빠졌다. 그때까지 아직 배에 남아있는 해적들 때문에 해적을 모두 소탕한 후에 선장님을 이송할지 이송과 함께 해적 소탕을 진행할지 고민했던 것. 결국 선장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즉시 이송을 선택했고, 작전 개시 5시간 만에 해적 전원 소탕까지 완료했다.

 

오만으로 옮겨진 선장님은 응급 수술에 돌입했다. 하지만 응급 수술에도 선장님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고 이에 당국에서는 이국종 교수를 현지로 파견했다. 중증외상환자 치료에 최고 권위자였던 이국종 교수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선장님의 상태를 확인하고 한국으로 환자를 옮길 것을 결심한다.

 

상태가 중해 혈액 수급이 안전한 한국으로 옮겨 마지막 승부 걸어보기로 한 것. 이에 이국종 교수는 선장님을 이송하기 위해 에어 앰뷸런스로 공수했다. 그러나 에어 앰뷸런스를 공수하는 데는 복잡한 절차와 어마어마한 비용이 필요했다. 이에 이국종 교수는 외교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쉽게 허락이 나지 않는 외교부에 이국종 교수는 "내 이름으로라도 빌리겠다"라며 4억 4천만 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스스로 부담할 각오를 보였고, 이에 외교부는 결국 이를 승인하고 에어 앰뷸런스를 대여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새벽까지 이어진 수술. 그리고 5일 후 선장님은 마침내 눈을 떴다. 그리고 그는 벽에 걸린 "석해균 선장님 이곳은 대한민국입니다"라는 현수막 문구를 보고 안심했다.

 

이후 288일 만에 선장님의 무사 퇴원으로 아덴만 여명작전은 해피 엔딩을 맞았다. 석해균 선장님과 김규환 대위, 이국종 교수가 기억하는 그날은 어떤 의미일까.

 

석해균 선장님은 "어려움 속에도 길이 있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며 어떤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김규환 대위는 "우리의 준비 결과가 여명 작전으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라며 "국민이 위험해 처해있을 때는 언제든 도와드릴 수 있다"라고 밝혀 보는 이들을 안심하게 했다.

 

그리고 이국종 교수는 "당시 작전에 투입됐던 대원들은 지금도 그 일을 한다. 한국 사회가 버티는 가장 큰 힘은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 덕분인 것 같다"라고 말해 공감을 자아냈다.

 

그날의 이야기를 들은 이야기 친구들은 "특별한 힘을 가진 이만이 영웅이 아니다.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이들이 영웅이다"라며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우리를 지키는 영웅이 있는데 국민 모두가 영웅이 될 자질을 갖고 있다"라고 감상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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