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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수원 10대 소녀사건"누군가 날 믿어준다면" 진실 밝혀낸 믿음의 힘

na.rin 2022. 9. 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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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일곱 명의 용의자 : 누가 소녀를 죽였나'라는 부제로 수원 10대 소녀 살인사건을 조명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 2
 
시간
목 오후 10:30 (2021-03-11~)
출연
장도연, 장성규, 장항준
채널
SBS


2007년 5월 14일 수원의 한 남자 고등학교에서 10대 소녀의 시신이 발견됐다. 경찰은 소녀의 차림새로 그를 노숙인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며칠 전 노숙인들이 한 노숙 여성을 폭행하는 사건을 목격했다는 증언을 듣게 된다.

이에 경찰은 노숙이 정 씨와 강 씨를 용의자로 체포했고, 이들은 피해 여성이 돈 2만 원을 훔쳐갔다고 착각해 폭행했다는 진술을 하며 범행을 인정했다. 이후 재판을 통해 이들은 유죄 판결을 받았고 그렇게 사건은 마무리됐다.


그런데 8개월 후, 검찰은 새로운 첩보를 입수했고 이에 사건은 완전히 뒤집힌다. 제보자는 자신의 친구 및 후배들이 소녀를 살해한 진범이라고 했던 것. 이에 수사기록을 다시 살핀 검찰은 당시 대수롭지 않게 여긴 진술에 주목했다. 당시 강 씨와 정 씨는 "꼬맹이들이 돈을 훔친 여자를 잡았다고 해서 같이 간 것"이라고 했던 것.

그 후 경찰은 꼬맹이라 불린 5명의 아이들을 검거했고, 이들은 14세에서 18세까지의 수운 역에서 노숙하던 가출 청소년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범행을 자백했고 이는 앞서 유죄 판결을 받았던 강 씨와 정 씨 증언과도 일치했다. 이에 검찰은 앞서 잡혔던 노숙자들은 공범이며 아이들이 사건의 주범이라 확신했다.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이들은 다름 아닌 경기도 청소년 상담복지 센터의 선생님들이었다. 이들은 6개월 정도 센터에서 지내던 아이들에게 강한 배신감과 함께 실망을 받았다. 특히 상담 센터의 소장님은 유난히 애교도 많고 살가워서 수양아들로 삼았던 김성재 군이 용의자라는 사실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한걸음에 구치소로 달려간 소장님. 그러나 성재는 소장님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소장님은 부인하지 않고 침묵하는 성재를 보며 범행을 인정했다고 여기며 실망했다.

그리고 이는 다른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선생님들에게 어떤 말도 전하지 않았고 선생님들을 상실감에 괴로워했다, 그런데 3개월 후 한 통의 편지가 센터로 도착했다.

검거된 다섯 아이 중 한 명이었던 경진 양. 경진이는 선생님에게 "정말 답답해요. 거짓말 탐지기 하고 싶어요"라며 "우리는 OO고도 안 갔고 그 여자애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 답답해요. 선생님은 저희를 믿어줬으면 좋겠어요"라고 결백을 주장했던 것.

편지를 확인한 선생님은 믿어달라 호소하는 아이의 외침에 가슴 아파했다. 그리고 곧바로 긴급회의를 소집해 이 사실을 공유했다. 이에 선생님들은 반신반의하는 마음들이었다. 그러나 편지를 받은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에게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억울함이 있다면 풀어줘야 하지 않냐고 호소했고, 이에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죄가 있든 없든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의 사건을 맡고 있던 국선 변호인을 만나러 갔다.


아이들의 국선 변호인은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 이제는 유명인이 됐지만 당시에는 고졸 학력에 섬마을 출신으로 무엇하나 내세울 것 없는 초보 변호사였던 그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지 않고 귀찮은 일이 생겼다고 여겼다. 이에 박준영 변호사는 선생님들에게 "퇴근하고 사무실로 와서 아이들 별로 한 분씩 맡아서 진술을 분석하라"라며 조건을 받아들이면 자신도 아이들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변론을 하겠다고 했다.

박 변호사의 무리한 조건에도 선생님들은 이를 받아들이고 휴식 시간과 주말까지 반납하고 매일매일 그의 사무실에 출근해 진술을 분석했다. 특히 선생님들은 7명의 진술을 날짜순으로 정리하고 쟁점별로 나눠 비교까지 한 진술 분석표를 만들어냈다.

이에 박 변호사는 이 사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고 또한 큰 자극을 받았다. 7명의 진술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는데 학교에 들어가는 방법에 대한 진술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천차만별이었다. 그리고 현장 검증 영상에서 아이들이 자신들의 의지대로 범행을 진술하는 것이 아닌 수사관과 검사의 설명에 따라 진술하는 모습이 포착되어 충격을 안겼다.

그리고 사건 발생 시기에는 이미 보급되어 있던 CCTV. 선생님들은 현장을 직접 돌며 CCTV의 위치와 개수를 모두 체크했다. 그 결과 아이들이 진짜 범인이라면 반드시 CCTV에 포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CCTV 영상을 찾았으나 이미 시간이 지나 확인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경찰은 CCTV에서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해 영상을 확보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의아함을 자아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왜 자백을 했던 것일까? 물리적 압박이 없었음에도 허위 자백을 한 아이들. 사실 여기에는 놀라운 사실이 숨겨져 있었다.



사건 발생 이틀 전 아이들은 돈 2만 원을 잃어버리고 그 후 치마를 빌려주면 2만 원을 주겠다는 여성 노숙자를 만난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가 자신들의 돈을 가져간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추궁했고 그 후 폭행이 있었다는 것.

그랬다. 아이들과 정 씨와 강 씨는 시신이 발견되기 이틀 전 있었던 폭행 사건의 여성 노숙인과 고등학교에서 발견된 10대 피해자를 혼동하여 진술했던 것이다. 두 개의 사건이 뒤섞이며 아이들과 노숙자 모두 이틀 전 사건에 대해 진술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7명이 두 개의 사건을 모두 저질렀다고 판단했던 것이었다.

1심 재판에서 아이들은 모든 범행을 부인했다. 그리고 증인으로 나선 노숙자 정 씨도 범행을 부인하며 "아이들은 내가 잘못 진술하는 바람에 범인이 된 것"이라고 아이들의 무죄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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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적능력이 떨어졌던 정 씨는 첫 수사 당시 범행을 부인했으나 경찰이 믿어주지 않나 조사 5시간 만에 범행을 인정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용의자 7명 중 6명이 자백을 번복했고, 이에 박 변호사는 승소를 확신했다.

당시 박 변호사는 "이 사건을 통해 알려지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기자들 인터뷰도 해야겠다면서 사무실 청소도 했다"라며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의 이런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1심 판결은 "피고인들의 범행이 증명되고 인정된다"라며 유죄 판결을 내린 것. 법원은 "거짓말로 범행을 부인할 수는 있지만 거짓말로 범행을 자백할 리는 없다"라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유지했다. 이에 아이들은 각각 실형을 선고받았고, 정 싸는 위증죄로 기소까지 됐다.

예상하지 못한 최악의 결과에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절망했다. 그리고 박 변호사는 안이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아이들을 다시 만나러 갔다. 그는 아이들에게 사과를 구하며 "너희가 괜찮다면 무료로 2심 변호를 하겠다"라고 제안했다. 이에 아이들은 선택지가 없었다. 자신들을 믿고 도와준다니 그에게 다시 변호를 맡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박 변호사는 정신을 차리고 폭력이나 고문 없어도 허위 자백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조사 과정이 담긴 영상 공개를 요청했다. 그리고 재판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녹취록 작성을 평소 알고 지내던 녹취 전문 속기사 윤병임 씨에게 부탁했다. 박 변호사는 속기사에게 자신이 맡은 사건에 대해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했고, 이에 그의 진심을 느낀 속기사는 무상으로 한 달간 녹취록 작성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충격적인 내용이 드러났다. 아이들은 거듭된 조사 과정에서 자신들을 믿어주지 않는 수사관과 검사 앞에서 자포자기했다. 특히 검사는 아이들을 겁박하며 허위 자백을 유도했고, 단순히 묻는 말에 "예"라고 답하는 아이의 진술서에는 검사의 질문 내용을 아이의 답변으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항소심이 시작되고 박 변호사는 "검사는 물적 증거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성급하게 확신을 갖고 무리한 수사를 했다"라며 조사 과정의 문제를 하나하나 지적했다. 이에 검찰은 공판 조서에 "노숙 청소년은 저희가 생각하는 청소년과 특성이 너무나 다르다. 길거리에서 배운 들고양이 같은 야생성이 있다. 그리고 항상 절도 폭행 성매매 살아남기 위해서 돈도 마련해야 되고 그런 일로 매일매일 밤을 보낸다"라며 아이들을 향한 편협에 가득 찬 시선을 드러냈다.

박 변호사는 노숙자 강 씨를 증인으로 소환했다. 그는 범행을 부인하지 않은 유일한 인물. 이에 박 변호사는 그를 추궁했다. 하지만 강 씨는 거듭된 추궁에도 진술을 번복하지 않았고, 그렇게 재판은 무엇 하나 제대로 못해보고 끝나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때 판사는 강 씨를 향해 편안하고 따뜻한 어투로 "증인이 진술을 번복하면 위증죄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친구의 억울함을 풀 수도 있을 것이다"라며 "모든 상황을 잘 생각해서 사실대로 증언해달라. 그날 정 씨가 사건 현장에 간 것이 사실이냐"라고 물었다. 이에 한참을 아무 말이 없던 강 씨는 결국 "그날 정 씨와 아이들은 사건 현장에 가지 않았다"라며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다.

그리고 2009년 1월 2심은 이 사건에 대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며 피고인 전원에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검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상고했고, 2010년 7월 대법원 최종심에서는 다시 한번 전원에 무죄 판결을 내렸다.

드디어 무죄가 된 아이들과 이를 지켜보는 선생님들은 행복의 눈물을 흘렸고, 박 변호사도 마찬가지였다. 2년 반의 긴 여정 끝에 아이들은 자신들을 믿어주는 누군가 덕에 새롭게 나아갈 희망을 얻었다.



14년이 지난 현재 아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경진 씨는 현재 1명 빼고는 다 연락을 하고 지낸다며 "다들 자리를 잘 잡고 있다"라고 소식을 전했다. 또한 본인은 현재 결혼 후 아이를 낳아 잘 기르고 있다며 "항상 감사하다는 생각을 갖고 살고 있다"라고 말해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당시 경진 씨의 외침에 귀 기울였던 김태진 선생님은 여전히 상담 일을 하며 누군가의 메시지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박 변호사는 이후 2014년 노숙자 정 씨와 강 씨의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고 그 후 본인의 바람대로 아주 유명한 변호사가 됐다. 현재 그는 재심 전문 변호사로 사법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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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변호사는 그날의 이야기에 대해 "제가 정말 돈에 눈이 어두워 자본의 논리를 대변하는 변호사가 얼마든지 될 수 있었는데 그런 길을 가지 않게끔 만들어 준다. 그 사건 덕에 재심 사건을 주로 하는 변호사로 알려졌고 배운 것도 많고 깨달은 바도 많다. 몇 마디 말과 문장으로 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또 한 사람. 당시 사망한 10대 소녀. 그는 사건 직후 신원을 알 수 없어 무명녀라는 이름으로 시신 보관소에 옮겨졌다. 그리고 50여 일 만에 가족을 찾아 자신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었다.

소녀는 노숙인이 아닌 15세의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였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고 변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소녀를 살해한 범인은 아직도 잡지 못한 상태. 수사 기관이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 증거 수집의 기회를 모두 날렸고, 그러는 사이 공소시효도 이미 끝나버렸다.

이에 박 변호사는 "범인을 잡지 못한 상태에서 공소시효가 끝나 너무 안타깝다. 그래서 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 입장에서는 이 일이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한으로 남는 사건이 아닐까 싶다"라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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