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64인의 결사대 : 1976 도끼만행사건'이라는 부제로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생긴 그 날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1976년 비무장지대의 공동경비구역 JSA에는 군사분계선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JSA 안에서는 북한군과 남한군이 자유롭게 오갔고, 이에 이들은 자연스럽게 대화도 나누고 물물교환도 했다.
배재복 상병도 남북을 떠나 자신을 형이라 부르며 따르던 북한군을 떠올렸다. 당시 한 북한 경비병은 배재복의 사진을 직접 찍어 선물하며 우정을 나눴다. 둘은 총만 안 겨누면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사이였다.
그런데 사람 일이 알 수 없었다. 배상병이 북한 경비병에게 선물을 받고 열흘만에 분위기가 바뀌었던 것. 64인의 비밀 결사대에 북한군을 살상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던 것. 이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 위기, 전쟁 직전까지 갔던 사건이다.
사건 사흘 전 JSA 경비대대에는 북한군을 관측할 때 시야를 가리는 최전방에 위치한 미루나무를 베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에 한국인 노동자들 5명과 미군 중대장, 소대장, 한국군과 미군 총 11명이 작업을 하러 이동했다.
오전부터 가지치기 작업이 시작되던 그때, 멀리서 북한군이 탄 차량이 등장했다. 당시 공동경비구역의 최고 빌런이었던 북한군 박철 중위. 가지치기 작업을 유심히 지켜보던 그는 잠시 후 부하들을 잔뜩 데리고 돌아와 왜 북한이 심은 나무를 남한군이 자르는 거냐 시비를 걸었다. 이에 보니파스 대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가지치기 작업을 계속하도록 했다.
한국군 11명에 비해 북한군 30명, 수적 열세에 잔뜩 긴장감이 흐르던 그때 배상병은 북한군 무리에서 친하게 지내던 경비병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는 배상병의 눈길을 피했고, 잠시 후 박철과 그의 부하들은 하나 둘 소매를 걷고 한국군에게 기습 공격을 퍼부었다.
사방에서 몽둥이가 날아오고, 도끼를 든 이들까지 등장해 한국군과 미군을 공격했다. 여기저기서 피가 튀고 쓰러지는 사람들 속에서 더 이상당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이에 총을 장전하고 북한군을 조준했지만 끝내 방아쇠는 당기지 못했다. 공동경비구역에서 총격이 시작된다면 그 즉시 전쟁인 것.
그런데 그때 보니파스 대위가 쓰러졌다. 도끼에 여러 번 맞아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 올라있었고, 그의 주변에는 피가 낭자했다. 그를 급히 병원으로 이송하던 중 한국군은 긴급 상황임을 알렸다. 이에 헬기를 대기시키고 5분 대기조까지 출동했다. 그러나 북한군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북으로 도주했던 것.
이후 미군 배럿 중위도 도끼에 맞아 쓰러진 채 발견되고, 그는 병원으로 옮겼으나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보니파스 대위도 마찬가지. 한국 근무를 마치고 이틀 뒤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던 보니파스 대위의 마지막 임무는 바로 가지치기였던 것으로 드러나 안타까움을 더했다.
당시 끔찍했던 상황이 담긴 사진과 영상이 공개됐고, 이에 이야기 친구들은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괴로워했다.
8.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이 벌어진 다음날, 미군은 북한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범죄 행위를 인정하고 관련자를 처벌하라는 것. 그러나 북한 측은 적반하장이었다. 그들은 "이 도끼를 애초에 누가 들고 왔냐. 미군이 들고 온 거 아니냐. 미군이 먼저 공격했다는 증거가 도끼 아니냐"라며 정당방위라 주장했다.
이에 전 세계의 이목은 미국으로 쏠렸다. 당시 일본에 있던 주한 미군 사령관은 전투기를 타고 급히 한국으로 돌아와 데프콘 3을 발령했다. 전쟁을 준비하라는 것.
이번에는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으니 반드시 응징하겠다는 미군은 F-4 팬텀 전투기부터 F-111 전폭기, B-52 전략 폭격기 등을 한국으로 모이게 했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라 전투기 65대와 군인 4천 명이 승선한 항공모함 미드웨이 호도 한국으로 출발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상군에 해병대까지 육해공이 총동원되어 북한을 위협했다. 이에 북한도 곧바로 전쟁을 준비했다.
1976년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는 사건 직후 "우리가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 미친개한테는 몽둥이가 필요하다"라며 북한이 다시 한번 도발하면 즉각 응징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작전 전 날 밤 11시 45분 주한 미군 사령군에는 폴 버니언 작전이 떨어졌다. 엄청난 괴력으로 나무를 베는 미국 전설 속 나무꾼의 이름인 폴 베니언의 이름을 딴 이 작전은 도끼만행의 시작이 된 미루나무를 베어내라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 작전의 숨은 의미는 20년 뒤 미군이 공개한 비밀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비무장지대에 있는 북한의 국경수비대 막사를 무력화시키라. 폴 베니언 작전은 북한의 반격이 온다면 화력을 총동원에 북으로 밀고 올라가서 휴전선을 연백평야까지 끌어올리며 대한민국의 지도를 바꿔버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작전이었다.
특히 북한의 전면전이 일어나면 핵폭탄까지 투하하라는 지시까지 있었다. 미루나무 한 그루 때문에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미루나무를 베기 위해 부대가 출동하고 그 위는 전투 헬기, 그 위는 팬텀 전투기, 그 위는 전폭기, 그 위는 폭격기 무려 4중으로 하늘을 철통 호위했다. 그리고 바다에는 항공모함이 그리고 휴전선 인근 대포는 북한군 막사를 조준하고 있었다.
드디어 미군들이 미루나무 벌목을 시작하고 한국군은 북한과 제일 가까운 최전방 JSA에 공동 경비대대로 위장한 64인의 특전사들이 대기했다. 이들의 임무는 미루나무를 벌목하는 미군의 경비 임무였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그들의 진짜 임무가 아니었다.
일명 독수리 작전으로 대기 중이었던 64인의 결사대에게 주어진 진짜 임무는 북한군을 보이는 대로 사살하라는 살상 임무가 주어졌다. 그리고 이를 지시한 것은 바로 박정희였다. 하지만 이는 미군 몰래 진행된 명령이었다.
당시 단독 작전을 계획한 미군에 우리 측은 엄연히 우리나라 우리 땅에서 벌어진 일이니 최일선을 막겠다고 했다. 주한 미군 사령군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군에게는 총기 소지는 절대 불가하며 태권도가 가능한 사람들을 차출해달라 요구했다.
사건 1년 전 베트남 전쟁 종전 후 반전 여론이 높았던 미국 내부. 특히 미 대통령 선거가 다가온 그때 재선에 도전하는 미국 정부는 민심을 잃지 않기 위해 더 이상의 전쟁은 원치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자존심도 구길 수는 없었던 것. 이에 북한이 더 이상 도발을 하지 못하게 제대로 단단히 겁을 주는 것을 목표로 엄청난 스케일의 무력시위를 펼쳤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군에도 총은 절대 안 된다고 제지했던 것.
이에 한국 특전사는 총 대신 손에 곡괭이 자루를 들게 됐다. 그러나 비밀 임무를 받은 결사대는 출동 직전 무장하라는 지시로 은밀하게 무기들을 숨겨 출동했다. 그들은 북한을 응징하겠다는 각오로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 서서 북한을 지켜보았다.
미루나무 벌목이 진행되는 동안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무사히 미루나무가 쓰러졌고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그리고 그때 64인의 결사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한군 초소을 급습한 결사대. 그러나 북한군 초소 어디에도 북한군은 없었다. 이에 화가 난 결사대는 초소의 시설물을 모두 파괴했다. 그러나 이에도 북한군은 아무 대응이 없었고, 미군과 한국군 모두 무사히 임무를 끝내고 돌아왔다.
다음 날 북측의 입장이 전해졌다. 그들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이번에 사건이 일어나서 유감입니다. 앞으로는 그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양측이 다 같이 노력해야겠습니다"라며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애매한 사과를 받아들였고 사건은 일단락됐다.
방송에서는 모든 사건의 시작이 된 미루나무가 공개됐다. 전병호 상병이 갖고 있던 미루나무에는 그날의 날짜와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풍경이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날 이후 공동경비구역에는 하나의 선이 생겼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경계선인 군사분계선. 남과 북의 충돌을 막기 위해 생겨난 이 선으로 이전처럼 남북 병사들이 서로 우정을 나누던 풍경들은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세상에서 가장 좁고 낮은 선은 절대 넘을 수 없는 가장 높은 벽이 되어버린 것.
그런데 최근 이 선을 넘었던 일이 있었다. 지난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선을 뛰어넘어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손을 잡고 선을 넘었던 것. 이는 선이 만들어지고 42년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또다시 이 선은 다시 넘을 수 없었다. 언제쯤이면 이 선을 넘는 날이 다시 올까?
그날의 이야기에 이야기 친구들과 이야기꾼들은 그날 전쟁이 없었기에 누릴 수 있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오늘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또한 사람과 사람의 일이기에 언젠가는 같이 손 잡고 뛰어넘어가고 시멘트 단을 뛰어넘는 날이 반드시 오기를 빌었다.
그리고 장현성은 "과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자연스러웠던 시기가 있다. 그러나 현재에는 통일에 대한 생각이 제각기 다른 요즘, 그럼에도 평화는 모두가 원하는 것임에 변함없을 거다"라며 "어떠한 경우에도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바람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