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하면 생각나는 작열하는 태양. 태양은 지구상 생명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뜨거운 여름 뙤약볕 아래에서는 '태양이 싫어' 소리가 절로 나온다. 후텁지근한 날씨는 사람들의 인내를 시험하고 눈부신 햇빛은 눈을 찌푸리게 한다. 태양은 우리 신체 내부에 미묘한 작용을 일으킨다. 태양과 인체가 만나는 곳에서 주목해 볼 만한 것으로 멜라닌과 멜라토닌이 있다. 햇볕에 의해 울고 웃는 멜라닌과 멜라토닌의 작동 메커니즘을 살펴본다.
◆한낮, 멜라닌으로 살을 태우다
여름 해수욕장에서 파도 치는 해변을 거니는 사람의 피부가 새하얗다면 왠지 부자연스럽다. 태양에 적당히 태운 구릿빛 피부가 더 잘 어울린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피부는 건강함과 섹시함의 상징이다.
햇볕에 피부가 타는 것은 바로 몸속의 멜라닌 때문이다. 멜라닌(melanin)이란 사람의 피부나 털, 눈 등에 존재하는 흑갈색 알갱이로 된 색소. 멜라닌을 만드는 멜라닌 세포가 자외선과 반응하게 되면 피부가 검게 변하게 된다. 피부가 자외선에 의해 자극을 받으면 멜라닌 세포가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멜라닌을 만들고, 이 멜라닌이 피부 위쪽으로 올라와 피부가 검게 탄다. 햇볕을 많이 쬘수록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기제로 멜라닌이 많이 생성되고, 피부도 더 검어진다.
인체에서 생성되는 멜라닌 색소에는 밝은 색을 띠는 페오멜라닌(pheomelanin)과 어두운 색을 띠는 유멜라닌(euamelnin) 두 가지가 있다. 이 두 가지 멜라닌의 섞임 비율에 따라 피부는 물론 눈과 머리카락 색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멜라닌에 의해 인종도 결정된다는 말인데, 기본적으로 백인들에게는 페오멜라닌이, 유색인종에게는 유멜라닌이 많다. 아무리 햇볕을 쬐어도 피부가 검어지지 않는 사람은 멜라닌이 거의 없거나 아예 안 만들어지는 경우다. 이런 증상을 '백색증' 내지 '알비노(albino)'라고 한다. 멜라닌이 많은 사람일수록(피부가 검은 사람일수록) 잘 타고, 멜라닌이 적은 사람은 잘 안 타거나 타더라도 금세 회복된다.
햇볕을 쬐면 비타민D도 생성되고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만 이 역시 너무 과하면 문제가 되는 법이다. 일광 화상(태양 노출 4~6시간 후 피부가 붉어지고 화끈거리며 심한 경우 물집이 생기는 증상)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피부 노화를 유발할 수도 있다. 특히 피부가 흰 사람이나 서구인의 경우 햇볕 과다 노출로 피부 기저세포암이 증가한다. 오존층 파괴에 대해 서구에서 더욱 관심을 갖는 것도 백인들이 피부암에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인공 선탠은 악성 흑색종을 60% 정도 증가시킨다는 보고도 있다.
◆멜라토닌, 잠의 묘약
열대야가 계속되는 대구의 밤은 잠자리에 들기도 고역이다. 이는 단순히 더워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밤의 호르몬' 멜라토닌이 관여를 한다. 멜라토닌(melatonin)은 뇌 속에 위치한 송과선에서 생성, 분비되며 24시간 주기로 수면을 관장한다. 햇빛이 눈을 통해 들어오면 이를 원료로 해서 멜라토닌이 생성된다.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낮과 밤이 바뀌어 잠을 보채는 아기들이 있다면 낮 시간대에 30분~1시간 정도 햇볕을 쬠으로써 밤에 잠을 잘 잘 수 있다.
멜라토닌이 분비되는 데는 기온도 변수다. 체온이 높아지면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들기가 더 어려워진다. 어렵게 잠이 들더라도 체온 유지가 제대로 안 되면 뒤척이다가 잠에서 깨어나기 십상이다.
멜라토닌의 '천연 수면제' 기능을 응용한 합성 멜라토닌 보충제는 불면증 치료나 시차 극복(Jet Lag)에 이용되기도 한다. 낮과 밤이 바뀌는 생활을 하는 교대 근무자들의 호르몬 분비 이상 치료제로도 쓰인다. 안정성이 뛰어나 미국이나 다수의 국가에서 불면증 치료에 활용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약품이 아닌 건강식품으로 분류돼 가격도 싸(1개월치 10달러 정도) 애용되고 있다.
멜라토닌은 계절적인 주기에도 관여를 한다. 겨울에는 밤이 길기 때문에 멜라토닌 분비량이 많다. 여름에는 낮이 더 길어서 적게 분비된다. 멜라토닌은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에 계절성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을 치료할 때에도 응용한다. 강제적으로 광선을 쬐는 광선치료로 멜라토닌 분비는 줄이고 기분을 좋게 해주는 호르몬(세라토닌)의 양을 늘린다. 겨울철 흑야(黑夜: 백야의 반대) 현상이 나타나는 북유럽에선 실내조명을 서서히 점등하도록 해 우울증 발병을 줄이고 있다.
멜라토닌은 이밖에도 노화 방지와 면역기능 강화, 혈압 저하, 항암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화를 지연시키는 기능 때문에 한국에서는 '젊어지는 신비의 약'으로 알려져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작용도 물론 있다. 기미나 주근깨가 생기기도 하고 급성 기억력 상실, 위장장애 등이 보고됐다. 무엇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장기적인 연구결과가 없기 때문에 더욱 주의를 요한다. 일반적으로 추천되고 있는 복용량(3~10㎎)이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의들은 ▷임신부나 젖을 먹이는 산모 ▷가임 여성 ▷스테로이드 복용자 ▷정신질환이나 심한 알레르기, 자가면역질환, 또는 임파종이나 백혈병과 같은 면역계통의 암을 가진 사람들은 복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