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스타였던 O.J. 심슨이 재판대에 선 이유
미식축구 역사상 뛰어난 선수들은 많지만 최고의 러닝백을 뽑으라면 거론되는 이름들 중 하나인 O.J.심슨.
1973년 시즌 MVP에 뽑히며 당시 그가 기록한 게임당 143.7야드의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역대급 기록일 정도로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그는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기를 얻었고 영화를 찍거나 버라이어티 쇼에도 참여할 만큼 다방면으로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다.
1994년6월12일
모든것을 다 가진듯 했던 심슨을 절망으로 떨어뜨리는사건이 발생한다.
그가 전 부인 니콜 브라운 심슨과 그녀의 친구 론 골드만의 살인용의자로 체포된것.
당시 이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줬고 소식을 접한 다른나라의 유명인사들까지 관심을 기울정도로 파급력이 상당했다.
사건이 있던 날 식당 종업원이었던 론은 친하게 지내던 니콜의 집에 방문했다.
니콜의 어머니가 식당에 두고 온 시계를 돌려주기 위해..
얼마 후 두 남녀는 끔찍학 살해된 상태로 발견되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그곳에서 범인을 추정할 여러 증거를 포착한다.
현장에 남아있던 피가 묻은 왼쪽장갑, 범인의 것을 추정되는 발자국을 토대로 유력용의자들을 확인하던 경찰은 니콜의 전남편 심슨을 의심한다.
범인은 가라데 유단자인 론과 15분가량 사투를 벌여 상처를 입었을텐데 우연히도 심슨의 왼손에 상처가 남아있었던 것.
사건발생 5일 뒤인 6월 17일
심슨은 경찰을 피해 도주했고 그의 도주극은 NBA파이널 생중계가 중단되고 방송될만큼 대단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듯한 제스처를 취하던 그는 결국 체포됐고 많은 이들이 그가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를 했다 생각했다.
검찰은 그가 범인일 확신했고 이어 열린 재판에서 여러가지 증거를 가지고 나와 심슨을 몰아붙인다.
검찰이 제시한 결정적 증거들은
1.사건현장에서 발견된 왼쪽장갑에느 심슨, 니콜, 론으 DNA가 검출됐다.
2. 오른쪽 장갑이 심슨의 집에서 발견됐다.
3.심슨의 양말에 묻은 혈액에서 니콜의 DNA가 검출됐다.
4. 론의 셔츠에서 아프로계 머리카락이 발견됐는데 심슨이 아프로계였다.
5. 현장에 있는 발자국의 사이즈가 심슨과 일치한다.
6. 니콜은 과거 심슨을 폭행으로 고발한 적이 있었다.
그밖에도 검찰은 사건 현장에서 도주하는 심슨처럼 보이는 인물을 봤다는 목격자까지 대동하며 그가 사건의 범인이라 주장한다.
재판은 심슨에게 불리할것 같았지만 그는 당시 600만달러로 드림팀이라 불리는 뛰어난 변호인들을 고용했고 그들은 불리했던 증거들을 하나하나 논파한다.
우선 그들은 당시 DNA대조 기술이 완벽하지 않음을 지적했고 과학 수사 과정에서 DNA가 훼손됐을 가능성이 크다 주장했다.
또한 DNA검사를 위해 심슨의 혈액을 채취해 갔는데 그 중 150mg이 사라졌다며 이에 관해 수사 담당관에게 어찌 된 영문인지 질문하자 담당관은 침묵한다.
변호사는 경찰이 심슨을 범인으로 몰기위해 그의 혈액을 사건 현장에 남긴것 아니냐는 뉘앙스로 질문을 이어나갔고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현장에 있던 감식반이 증거물을 맨손으로 다뤘고 피해자의 몸에 이불을 덮어두었는데 그 이불은 니콜의 집안에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과거 니콜의 집에 자주 들렀던 심슨의 DNA가 이불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상황.
변호인들은 이로인해 심슨의 DNA가 현장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있었다 주장한다.
또한 심슨이 과거 가정폭력을 휘둘렀단 이유가 살인사건의 범인이 될수 없다며 실제로 가정폭력이 있던 가정 중에 살인사건이 발생할 확률은 0.1%라는 통계자료를 내놓는다.
변호인들은 사건 담당형사인 마크퍼먼이 인종차별주의자라며 1차 수사 과정에서 없었던 장갑이 후에 발견된 점을 지적, 그가 현장에 장갑을 두었다 주장했다.
이에 관해 마크는 묵비권을 행사해 사람들의 의심은 더욱 커져갔고 초반 검찰이 증거를 제시할때만 해도 심슨의 범행이 확실할 것 같던 재판의 판도는 달라지고 있었다.
범인으 것으로 추정된 장갑을 재판에서 직접 껴보며 심슨은 마지막 결정타를 날린다.
검찰이 껴보라 제의를 하면서 껴본 장갑은 그의 손에 작았던 것.
이 장갑을 낀 상태로는 가라데 유단자인 론과 15분간으 사투를 벌이기는 커녕 다른 범행조차 벌일 수 없어 보였다.
변호인들의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재판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여론 몰이로 인해 배심원단마저 바뀌었고 1995년 10월 3일 심슨은 결국 무죄판결을 받았다.
어떤 이들은 범인이 심슨의 아들이라 주장했지만 정확한 물증이 없어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면서 심슨은 무죄 방면 후 책까지 출간하며 다시 행복한 삶을 찾은것같았다.
하지만 1997년 니콜의 유가족들이 심슨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고 그는 패소하며 3350만달러를 유가족에게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형사소송에선 그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없으므로 무죄를 받았지만 민사소송에선 그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의 배심원 판결을 받으며 패소한 것.
당시 배심원단은 백인으로 이뤄져 있었다.
또한 그는 2007년에 강도질을 하다 체포되며 33년형을 선고 받았고 2017년 10월 2일 가석방돼 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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