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했던 이유는 가난 탓이라 생각한 남성이야기
1989년5월16일 새벽,
일본 도쿄도 네리마구 나카무라에서 이상하게 달려가는 남성을 봤다는 근처가게 주인의 목격 진술이다.
당일 새벽 당직이었던 코바야시 경부(일본경차계급)와 야마자키 경부보를 살해한 뒤 이상한 뜀걸음으로 도주했다는 남성
이 목격 진술에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지그재그로 뛰며 달아나는 것은 일본 자위대에서 가르치는 전술로 총알을 피하거나 은폐, 엄폐 시 사용되는데 범인이 자위대에 속해있거나 혹은 전역한, 아니면 그쪽에 심취해 있는,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이 있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나타냇다.
이 단서를 토대로 경찰은 범행 발생 23일 만에 범인이 시바사키 쇼이치를 체포할 수 있었다.
1969년1월1일 도쿄도 이타바시구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쇼이치는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처음부터 불우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태어났을 무렵에는 화목한 집안이었는데 가공업체에서 근무하는 아버지와 화장품 영업소 소장인 어머니 때문에 가정형편은 좋은 편이었지만 아버지가 도박에 빠지면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지인을 따라 경정장에 다니면서 시작된 아버지의 도박은 쇼이치와 여동생의 저금통을 뜯어 가는 지경까지 오게되었다.
이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일 다투기가 일쑤였고 몇 년에 걸친 불화는 부모님이 결국 별거를 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회사에 딸린 방에서 생활하던 중 한 남성과 사귀면서 그의 집으로 들어가게된다.
그것이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라는 것은 알지도 못한 채...
어머니의 애인은 처음에는 인자한 모습으로 그들을 대했지만 사실 매우 폭력적인 인물이었고 얼마 안가 그는 어머니에게 폭언을 가하며 폭행을 휘둘렀으며 심지어 쇼이치에게까지 손을 대고는 했다.
그에게는 쇼이치 또래의 아들이 있었는데 부전자전이라는 말처럼 그의 아들 역시 폭력으로 쇼이치를 대했지만 쇼이치는 이를 지인들에게 내색하지 않고 혼자 속으로 참고 있었다.
물론 당시 잘 살펴보았다면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도 있었겠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의 일에 관심을 가짖 않았다.
어머니 역시 거듭되는 폭력으로 우울증을 앓아 자식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학교 친구들은 쇼이치를 조용하고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으며 어둡고 고독을 좋아하는 타입이라고 말했다.
8년, 어머니가 애인과 헤어지기까지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그제야 쇼이치는 해방될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육상 자위대에 입대한 쇼이치는 30명의 동기 중에서도 성적이 상위권일 만큼 좋은 소질을 보였다고 한다.
전투훈련은 정말 즐겁다. 좋은 스트레스 해소가 된다라고 말했던 쇼이치이지만 자위대라는 조직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던 그는 1989년3월에 전역해 운전면허를 따고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고등학교 졸업장만 있는 그에게 세상은 생각보다 녹록하지 않았고 결국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해야 했다.
당시 그를 고용했던 가게 점장은 처음엔 걱정했지만 무엇이든 적극적이고 성실했던 쇼이치를 신뢰하며 가게 열쇠를 맡기면서 열심히 일했지만 쇼이치가 받는 급료는 시간당 600엔.
한화 약 6,000원에 해당하던 금액으로는 많은 돈을 가지고 싶다라는 꿈을 이룰 수 없었다.
그가 이런 꿈을 꿨던 이유는 자신이 겪었던 불우했던 어린 시절, 어려운 생활 환경이 모두 가난 탓이라 생각했기때문이다.
하지만 이 상태로는 큰돈을 모을 수 없고 그리되면 다시 불우했던 시절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한 그는 돈을 벌 방법을 궁리했다.
한번에 많은 돈을 벌 방법. 그가 도달한 결론은 은행강도.
여러모로 계획을 짜던 그는 성공확률을 높이기 위해 단순한 흉기로는 어렵다 생각했고 범행에는 권총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경찰관을 덮칠 수 밖에 없다라는 어이없는 결론을 내렸던 쇼이치.
그는 자신의 거주지에서 가깝고 범행 후 도주로 용이한 인근에 있는 파출소를 대상으로 삼았다.
의심받지 않기 위해 아르바이트하는 가게의 정기휴일을 범행일로 잡아 렌터카를 타고 파출소 인근에서 대기햇던 그는 미리 준비한 쌍안경을 사용해 안을 살피며 경찰관이 혼자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직은 두명이서 해 분명 혼자가 되는 때가 올것이라며 그는 오후부터 계속 경찰서안을 주시했고 자정을 넘어 새벽2시50분경이 되어서야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한 경찰관이 파출소 앞에 놔둔 오토바이를 건물 뒤로 옮기기 위해 홀로 나온것.
쇼이치는 오토바이를 홀로 옮기던 야마자키 경부보의 뒤를 따라가 준비해둔 흉기로 찌르고 권총을 훔치려 했다.
야마자키는 갑자기 공격을 받아 쓰러졌으나 자신의 권총을 가져가려는 쇼이치에게 저항했고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소란을 듣고 나온 코바야시 경부가 경찰봉을 들고 달려오자 쇼이치는 야마자키의 손을 뿌리친 뒤 그대로 흉기를 휘둘렀다.
그가 휘두른 흉기에 상처를 입은 코바야시 역시 쓰러졌지만 끝까지 저항하며 그가 권총을 가져가려는 것을 막았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다간 사람들이 몰려드리라 생각한 쇼이치는 도주했고 코바야시는 도주하는 쇼이치에게 3발의 위협사격을 한 뒤 파출소 안으로 들어가 긴급회선으로 상황을 알렸다.
야마자키와 코바야시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과다출혈로 세상을 등지고 현장을 조사하던 경찰은 당시 쇼이치가 도망가는 모습을 봤던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범인이 인근 지리에 익숙하고 자위대와 관련이 있으리라 판단했다.
게다가 쇼이치는 현장에 흉기를 보관했던 봉투를 놔두고 가서 지문을 얻을 수 있었다.
범행 흉기인 서바이벌 나이프를 비롯해 자위대 매점에서 판매하는 전문 장갑, 그리고 도주 시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던 증거를 토대로 경찰은 인근 비디오 대여점에 방문해 전쟁이나 액션을 좋아하는 자위대 출신의 고객이 있는지 물어봤다.
대여점 측은 고객정보를 모두 공개할 수는 없지만 경찰으 정보에 부합되는 최근 수상한 모습을 보였던 인물이 있다며 고객명단에 있는 한 남성을 가리켰는데 그가 바로 쇼이치였다.
경찰은 쇼이치를 찾아갔지만 그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며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6월7일에 그의 지문을 채취해 비교분석한 결과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아냈고 임의 동행을 요구해 그를 심문했다.
증거물에 남겨진 지문이 완전하지 않아 당시에는 지문만 가지고 그가 범인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려웠고 심문 당시 쇼이치는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으나 사망한 피해자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꺼내자 결국 눈물을 흘리며 자백을 했다고 한다.
죽일 생각은 없엇고 그들의 어디를 찔렀는지도 모른다며 범행에 대한 반성과 유가족들에게 용서를 빌었던 쇼이치.
검찰 측은 그의 범행에 무고한 두명의 경찰관이 사망했다며 사형을 구형했으나 변호사측은 살의가 없었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위해서가 아닌 마음의 상처, 그릇된 생각 때문에 발생한 범행이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1991년5월27일 재판을 맡은 판사는 사형을 선고했다.
쇼이치의 변호사는 항소했지만 곧바로 기각되었고 정신감정이 필요하다며 상고까지 했지만 1998년9월17일에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지지하며 그의 사형을 확정했다.
2014년 그는 대화를 거부하고 입에서 기이한 소리를 내며 조현병진단을 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도쿄 구치소 사형수 감방에서 형이 집행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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