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

타마슈드사건(미제)

na.rin 2022. 2. 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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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1월 30일 오후 7시경. 호주 남부의 해안 도시 애덜 레이드의 서머턴 해변을 거닐던 존 라이언스의 그의 아내는 웬 남자가 방파제 돌에 머리를 기댄 채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남성은 힘없이 오른팔을 위 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부부는 그를 초저녁부터 취해있는 취객 정도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갔다. 7시 30분과 8시 경에 몇몇 사람들이 그 남자를 봤지만 그들 역시 취객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다음날 오전 6시 30분쯤. 다시 친구와 함께 해변을 찾은 존 라이언스는 남성이 어제와 똑같은 자세로 똑같은 장소에 있는 걸 보고 무언가 잘못됐다고 판단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그가 사망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훗날 서머턴 해변의 남성, 타만 수드 사건이라고 불릴 사건의 시작이었다.

 

사건 발생 초기 경찰은 사건이 조만간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럴만했다. 남성의 사체는 죽은 지 몇 시간 밖에 안 돼서 부패도 되어있지 않았고, 따라서 얼굴, 지문, 치아 모두 무사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시신 자체도 깨끗했기 때문에 경찰은 부검 전에 이 남성이 그냥 병으로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문제는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했던 부검이 뜻밖의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남성은 동공이 정상보다 작아졌고, 뇌, 십이지장, 위 등등 몇몇 장기에서 혈액이 잘 흐르지 않아 고이는 바람에 생기는 울혈이 발견됐으며, 비장이 정상적인 크기보다 비대하고, 간과 위에서 출혈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참고로 남성이 사망한 시간은 12월 1일 새벽 2시 경이고 죽기 3~4시간 전 고기 파이를 먹은 것으로 확인됐다.) 무언가 비정상적인 죽음이었다. 부검의들은 조심스럽게 독살(신경계에 작용하는 진정제 바비 트레이트일 가능성을 더욱 조시스럽게 내비쳤다.)의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문제는 독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고, 주사 구멍 같은 것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기 파이에서도 독은 검출되지 않았다. 뭐 굳이 따지면 '심장이 멈춰서' 죽었다는 것만 알아냈을 뿐이다.

그 이외에 알아낸 점이라면 이 남성은 4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영국계이며, 치아 발육에 문제가 있는 선천적 무치증을 앓고 있지만 전반적 건강 상태는 양호하다는 것, 육체노동의 흔적은 보이지 않으며, 외모를 잘 관리했고, 입고 있던 옷은 여름(호주는 남반구라 12월이면 여름이다.)에 맞지 않는 정장들이지만 전부 고급 의류였다는 것이다. 문제는 의류에 통상적으로 달려있을 택이 전혀 없었다는 것, 그리고 치아 기록을 조사해 본 결과 호주 내에는 일치하는 치과 진료 기록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 이외의 특이점이라면 싸구려 담배 케이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정작 안에 든 담배들은 전부 비싼 고급 담배들이었다는 것이었다.

한편 남성의 소지품에 대한 조사도 이루어졌는데 지갑과 돈이 발견되지 않았고, 애덜레이드에서 헨리 해변으로 가는 열차표와 애덜레이드에서 글레널그로 가는 버스 표가 소지품 안에서 발견되었다. 이후 1949년 1월 14일. 호주 경찰은 애덜레이드 역의 사물함에서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여행 가방을 발견했는데, 여행 가방에서 돈은 겨우 6펜스 동전 하나뿐이었고, 그 이외에는 옷, 필기도구, 구두약과 드라이버 같은 것들뿐이었다. 다만 제품들 다수가 상당히 비싼 것들이었으며 미국제가 다수 섞여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궁>

일단 소지품이나 옷에서 신원 파악을 하는데 실패한 호주 경찰은 영어권 국가에 이 남성의 사진과 지문을 뿌리고, 언론에도 사진을 대서특필했다. 이때까지 신원 확인은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것은 착각임이 드러났다. 영어권 국가들의 수사기관들은 이 남성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답신만 보내왔다. 호주 내부의 언론 제보도 영 성과가 없었다. 한때 실종된 63세의 벌목공 로버트 월시로 추측되었지만 로버트 월시의 주변인들마다 말이 달랐고, 결정적으로 부검 결과 드러난 것들(육체노동을 안 함, 40대 초중반의 중년)과 달라 아닌 것으로 최종적으로 결정이 났다. 이후 빅토리아 주에서 일했던 남성이 아니냐는 말이 돌았지만 이것도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기껏해야 알아낸 것은 남성의 마지막 행적. 그것도 추측 정도였다. 이 남성은 11월 30일에 가방을 애덜레이드 역에 놔두고, 헨리 해변으로 가려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기차를 타지 않고(면도하다 기차를 놓친것 같다는 추측이 유력하다.), 글레널그로 가는 버스표를 사서 그 곳으로 갔고, 이후 7시 이후에는 서머턴 해변에 누워있다가 고기 파이를 저녁으로 먹고 죽었다는 것이었다.

1949년 4월, 추가 조사 와중에 남성의 바지에 있던 비밀스러운 주머니에서 이상한 게 발견되었다. 바로 'taman shud'라고 적힌 종이쪽지였다. 이 말은 페르시아 어로 종결, 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조사 결과 이 종이는 11세기 경 페르시아의 유명한 시인이자 천문학자, 수학자였던 오마르 하이얌이 지은 4행시 루이비야트를 에드워드 피츠제럴드가 1859년에 번역한 초판본에서 오려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초판본은 꽤 희귀하면서도 유명했는데 왜냐면 오마르의 이름이 서구권에 알려진게 바로 1859년 피츠제럴드가 환상적으로 번역해낸 이 초판본 덕이 컸기 때문이었다.

이 와중에 6월 9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4일전 아버지와 함께 실종된 클리브 마그노손이란 2살짜리 아이가 서머턴 해변에서 20km 떨어진 지점에서 죽은 채 발견된 것이었다. 발견 당시 아이의 상태는 서머턴 해변 사건과 유사하게 누워있는 상태였다. 아이는 발견 하루 전에 죽은 것으로 추정됐고, 사인은 독살 같기는 하지만 독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아이 아버지도 현장에서 같이 발견되었는데 살아있기는 했지만 몸이 쇠약해진데다가 미쳐있는 상태여서 정신병원에 수용됐다. 아이 어머니는 이 사건이 서머턴 해변 사건과 연관이 있으며, 자신이 복면의 남성에게 사건 직후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머턴 해변의 남성이 자기 남편의 옛 직장 동료 카를 톰프슨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 여성 역시 이후의 의료 검사에서 정신 이상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타만 수드 종이가 발견된지 3개월 정도 지난 7월 23일. 한 남성이 애들레이드 경찰서에 찾아와 루이비야트를 내밀었다. 이 책은 1859년 초판본이었으며, 타만 수드가 적힌 종이조각과 책의 찢긴 부분은 일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남성은 시체가 발견되기 1~2주 전 글레널그에서 자신과 처남이 잠시 차 문을 열어놓았다가 돌아왔을 때 차 뒷좌석에 책이 놓여져있었다고 진술했다. 이 책을 면밀하게 조사한 결과 책 뒷부분에는 수상한 암호문과 숫자열이 발견됐다.

경찰은 암호문과 숫자열의 의미를 알아내려고 했다. 그 결과 암호문 해독은 실패했지만 숫자열은 전화번호로 확인됐다. 숫자열은 2개였는데, 하나는 은행 전화번호였다. 해당 은행은 이 남성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이 남자와 연관된 건 이 은행에는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사건 현장에서 400m 떨어진 곳에 사는 테레사 파월이라는 한 간호사의 집 전화번호로 판명됐다. 이 여성 역시 자신은 그 남성을 모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그녀의 이 말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사건 발생일인 11월 30일에 그녀는 집에 없었고, 그녀의 이웃이 웬 수상한 남자가 그녀에 대해 전화로 물어본 적이 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찰은 그녀에게 남성의 모습을 본뜬 흉상을 보여주었는데, 그녀는 엄청나게 놀랐다. 태평양 전쟁 당시 종군 간호사로 복무했던 테레사 파월이라 이걸 보고 놀랐다는 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아닌가 하는 확신을 경찰이 가지게 하기 충분했다. 경찰은 테레사 파월을 압박했다.

결국 테레사 파월은 1945년 8월에 알고 지내던 알프레드 복살이란 장교에게 루이바야트를 선물로 준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이제 그 시신이 알프레드 복살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문제는 조금 더 조사해 본 결과 알프레드 복살은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것이었다.(그가 죽은 건 1995년이었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루이바야트는 1924년 판이었고, 타만 수드 문구도 멀쩡하게 있었다. 알프레드 복살과 시신의 연관성 역시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신원 파악은 실패로 끝났고, 사건은 그대로 미궁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다만 이후의 조사 결과에서 테레사 파월은 상당히 의문스러운 구석이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먼저 그녀는 1949년 당시 미혼모로 2살 정도 된 아들 로빈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경찰 조사 당시 그녀는 자신이 결혼을 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그 이외에도 1950년에 그녀는 존슨이란 성을 가진 남성과 결혼했는데 공교롭게도 그녀는 아들인 로빈의 성을 존슨이라고 지었다는 것이다. 뭐 이거야 불륜의 결과로 볼 여지가 있지만 문제는 밑에서 후술할 로빈의 유전적 특징이었다.

<이후의 이야기>

테레사 파월은 사건과 깊숙하게 연관된 것으로 여겨져 숱하게 언론의 취재 요청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취재 요청을 모조리 거부했다. 알프레드 복살의 경우 몇 번 언론의 취재 요청을 받아들여 인터뷰를 했었는데 1978년의 인터뷰에서 그는 서머턴 해변의 남자가 간첩일 수 있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실제로 해변 근처에는 미군의 기지가 존재하였고 당시는 냉전이 격화되려고 하던 시점이었다. 그렇다면 해당 남성이 소련의 스파이였을 개연성은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테레사 파월의 딸이 2013년 10월, 호주의 인기 시사 프로그램에서 "어머니가 거짓말을 했다. 어머니는 생전에 자신은 서머턴 해변의 남성이 누군지 아는데 그는 경찰보다 더 높은 자라고 했다. 어머니는 공산주의자고 러시아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어머니와 그 남자는 소련의 스파이였던 것 같다.'라고 말한 것이다.

사실 이게 의심할만한 것이기는 했다. 2007년에 죽은 로빈의 신체적 특징을 조사해본 결과 서머턴 해변의 남성과 유사한 유전적 특징이 발견된 것이다. 먼저 둘 다 선천적 무치증을 앓고 있었으며, 귀의 윗쪽 구멍(혹은 홈)이 귀의 아랫쪽 구멍보다 큰 굉장히 희귀한 특징을 가진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런 유전적 특징이 우연히 일치할 확률은 고작 1~2000만분의 1 이었다. 굉장히 의심이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대목이다.

이와는 별도로 2011년 경 서머턴 해변의 남성의 신원에 대해 신빙성 있는 주장이 나왔다. 1차대전 당시 수병으로 참전했던 H.C 레이놀드라는 인물의 사진과 서머턴 해변의 남성이 굉장히 닮았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실제로 사진을 비교해본 결과 두 사람은 상당 부분 닮았으며 특히 귀가 닮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단 이것은 유력한 증거일 수는 있어도 확실한 증거라고 보기는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여담으로 하나를 언급한다면 1945년 6월에 이미 호주 시드니 교외의 모스맨이란 곳에서 나름 유사해보이는 사건이 일어났었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싱가포르 출신의 유대인인 요셉 사울 하임 마샬이란 인물로 밝혀졌다. 1950년대 싱가포르 자립정부 수반을 지낸 다윗 마샬의 동생인 그의 사인은 독에 의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그의 가슴에서 루이바야트가 발견되었으며 그가 가지고 있던 판본도 굉장히 희귀본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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