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는 순간은 그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숭고한 시간이다. 이를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야말로 예술 중 예술이며 고로 나는 예술을 한 것이다" 이 내용은 1982년 벌어진 살인사건의 범인인 쾌락주의 살인마 이동식이가 한 말이다.
1983년 1월 11일 오전 11시경 금천구 시흥동 호암산...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목에 보자기를 맨 김 군은 추운 것도 잊은 채 연신 입으로 따따따 총소리를 내며 나무 뒤로 몸을 감춘다. 가쁜 숨을 고르며 살포시 고개 내밀어 주위를 살펴보니 자신을 찾기 위해 상대편 친구들이 나무총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고 이미 같은 편 두 명은 포로가 되어 나무총을 뺏긴 채 두 손을 들고 있었다. 김 군은 자신의 몸을 감추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니 건너편 바위 아래 낙엽이 쌓은 것을 보고 낮은 포복으로 숙달된 조교처럼 신속히 이동한다.
자신의 나무총을 내려놓고 낙엽을 치운 김 군은 괴상한 포즈의 여자 마네킹을 보고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선다. 그러자 김 군의 등에 둑탁함이 느껴지고 나무총으로 자신을 겨누며 승리의 포효를 하며 웃고 있는 상대편 친구들을 바라본다. 김 군과 아이들은 괴상한 포즈를 한 마네킹을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나무총으로 꾹꾹 치르자 서로에 얼굴을 쳐다보고는 말은 안 했지만 사람의 시체라는 것을 느끼고 들고 있던 나무총을 집어던지고 일사불란하게 사방을 도망친다.
낙엽에 덮여 나체의 모습으로 발견된 20대 중반의 여성의 시신은 서울시 금천구 시흥 본동(당시 구로구 시흥동) 호암산 중턱 장택산 별장 뒤편에서 동네 아이들에 의해서 최초 발견되었는데 사건 현장은 주변 절경이 수려하고 양지바른 곳으로 나체 여자 시신 이외에는 피해자의 물품 및 특별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겨울이고 통풍이 잘 되는 낙엽에 덮여 있어서 시신이 보존이 잘되어 있어 피해자의 지문을 확보할 수 있었고 사망자는 이발소 여종업원 김경희 씨로 밝혀졌다. 시신의 부검 결과는 성폭행 흔적이나 저항흔은 없었고 사인은 청산가리에 의한 중독사로 한 달 전에 사망했을 것이라는 소견을 보였다.
1940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동식은 성 도착증과 주폭이 심한 아버지가 6살에 죽자 고아되어 숙부 집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4살 되던 해 서울로 상경한다. 어린 나이에 특별한 근거도 없이 서울로 상경한 그는 15년 동안 폐지나 고철을 주우며 넝마주이 생활을 하다가 특수절도 혐의로 4차례 교도소를 들락날락하고 취미로 사진을 배우고 관심을 갖게 된다. 1975년 본격적으로 사진의 대한 기술을 익히고 1978년 지방 사진협회에 가입하고 11회 수상 경력을 쌓으면서 1982년 정식으로 한국 사진작가협회 회원이 된다. 나름 재주가 있었는지 사진 공모전에서 2차례 은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그중 수상작은 닭이 죽어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당시 아파트 보일러 배관공으로 일하던 그는 사진에 대한 열정이 강해서였는지 몰라도 몇십만 원의 월급을 받으면서까지 고가의 일제 고해상 카메라를 구입하여 동물의 죽어가는 모습을 촬영하고 가짜 죽음을 연출하여 사진을 찍는 등 괴상한 장면에 대한 사진 촬영하는 것을 일삼았다. 심지어 자신의 아내를 일본 포르노 배우와 같은 포츠 취하게 하고 사진을 찍는 변태적인 행위도 보이고 이렇게 찍은 사진은 종로 무허가 현상소에서 경찰을 사칭하여 인화하였다. 그런 그는 쾌락주의 살인마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1982년 11월 25일 추운 날씨에 불구하고 짧은 치마에 나름 멋을 낸 김경희는 권 씨 아줌마가 적어준 주소를 확인하면서 가락동 00아파트 상가 주변을 훑어본다. 세진 이발소 간판과 적어준 종이를 번갈아 보며 옷맴시를 다듬고 조심스럽게 지하 계단을 내려간다. 김 양이 문을 당기자 현관문에 달아 놓은 종소리와 함께 이발관 최 씨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현관문으로 향하고 20대 중반에 이쁘장하게 생긴 여성이 자신에게 인사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얼떨결에 인사를 한다. 서로 간단히 이야기를 마친 이발관은 같이 일하게 될 오 양을 불러 어떻게 일하는지 알려주라고 하지만 사실 퇴폐이발소에서 여자가 하는 일 뻔했다.
다음날 김 양은 유니폼이라고 입혀놓은 하늘하늘한 짧은 원피스에 치마 끝자락을 잡고 내려보지만 간신히 팬티만 가리고 있었고 그런 모습을 지켜본 오 양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짧은 한숨을 쉰다. 그러자 밖에서 문이 열리는 종소리가 들리고 20분 뒤 이발사가 김 양을 부르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40대 중반에 마른 체형의 남자는 접혀진 의사에 몸을 기댄 채 머리만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려 아래 위로 훑어보는 이동식을 보자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을 추스른다.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대구로 건너와 공장생활을 하던 중 20살에 남자를 만나 혼인신고를 하지만 주벽에 의한 폭력으로 이혼하고 2명의 아들과 함께 서울로 상경한 김 양은 다른 곳보다 돈벌이가 괜찮은 이곳에서 돈을 모아 조그마한 가게라도 차릴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웃는 얼굴로 이동식에게 인사를 건넨다.
독한 마음으로 이동식의 거친 손을 참은 김 양은 옷을 추스르며 이일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고 한
쪽에서는 입가에 담배를 물며 손가락으로 사각형을 만들어 김 양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동식은 사뭇 진지해 보였다. 자신이 사진작가이며 사진 모텔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하고 팁과 함께 한국사진협회 회원의 인구가 새긴 명함을 주고 김 양의 엉덩이를 툭치고는 밖으로 나간다. 그 후 하루가 멀다 하고 김 양을 찾은 이동식은 자신의 수상 경력과 넉넉한 팁으로 환심을 사고 이번 출시작으로 모델이 될 것을 제안한다. 이번 출시작이 입상만 되면 모델인 김 양도 출세할 수 있을 것이라는 허세를 피우고 김 양도 조금씩은 호기심을 갖고 1982년 12월 14일 금천구 시흥에 있는 호암산에서 사진촬영 약속을 잡는다.
1982년 12월 14일 오전 9시 버스에서 내린 이동식은 겨울 햇살에 비친 호암산을 보며 야른한 미소를 지으며 김 양에게 사진촬영하다 보면 감기 걸릴지 모르는 가까운 약국에서 판피린 물약을 사고 김 양과 함께 미리 자신이 알아본 장소로 장택산 별장 뒤편으로 향한다. 이동식은 모델인 김 양보다 화려한 자세를 취하며 사진기 셔터를 누르고 있었고 김 양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그가 말한 포즈를 따라 하고 있었다.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카메라를 살펴보며 바위에 기댄 이동식에게 김 양은 자신이 모델로서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미안함 감정이 들었고 순간 한기가 스며든다. 이동식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판피린과 미리 만들어 놓은 청산가리를 넣은 캡슐 약을 꺼내 김 양에게 건네며 감기 걸릴지 모르니 먹고 다시 찍자고 하고 순간 한기를 느낀 김 양도 판피린과 함께 약을 먹는다.
김 양이 약을 먹는 걸 확인한 이동식은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를 고쳐 잡고 분주히 셔터를 눌러댄다. 약을 먹자마자 식도부터 위까지 불로 지진 것과 같은 고통에서 목을 잡고 쓰러진 김 양은 자신의 눈앞에서 여러 각도에서 사진의 찍고 있는 이동식이 보였다 사라지고 이동식이 보일 때면 그의 입가의 미소는 점점 더 번지고 있었다. 셔터 소리는 점점 멀리서 들리고 갑자기 집에 있을 두 아들이 걱정이 된다.
결정적 증거는...
다음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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