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1월 14일
부자이며 정치인인 할아버지, 아버지 밑에서 미시마 유키오가 태어난다.
그는 어릴 때부터 병약하여 학창시절 체육시간 때 수업을 빼기 일수였다.
높은 권력을 가진 집안 어른들 때문에 교사며 교장까지 유키오에게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병약하지만 공부는 누구보다 잘 했던 그는 할아버지, 아버지를 이어 본인까지 3대가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 고등문관시험 (우리나라로 따지면 서울대 졸업 후 5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그는 공무원의 삶보다는 시를 쓰는 것이 더 좋았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스승으로 두고 시 쓰는 것에 몰두했다.
몸이 약하고 시 쓰는 것을 좋아했던, 조용했던 그는 의외로 일왕에게 목숨을 바칠 것마냥 숭배하였고 일본의 군대 창설을 주장하며 스스로 군사 훈련을 받기도 하였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전범국으로 군대가 없고, 자국방어만 가능하며 선전포고는 불가능한 자위대가 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신념을 가진 청년들을 모아 '천황의 방패' 라는 조직을 만들고,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군의 북한 간첩 수색 및 휴전선을 둘러보았다.
또한 조직을 이용해 무력 반란을 일으킬 계획도 세웠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1970년 11월 25일
그는 자위대 우수 대원의 포상을 명분으로 천황의 방패 조직원들과 함께 동부 자위대 사령관실을 방문한다.
그 곳에서 중장 마츠다 켄리를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일본도로 협박하여 인질로 삼고, 몰려온 언론인과 자위대원들 앞에서 일본 헌법의 개정과 함께 일본군 창설을 주장하는 연설을 했다.하지만 마침 그 시기가 점심시간이었고, 사람들은 "왜 너 때문에 밥도 못 먹냐?", "사령관을 인질로 잡다니 비겁하다" 등 비난을 받자 이에 크게 실망하여 할복자살을 결심한다.
그는 자신의 지지자였던 모리타 마사카쓰와 함께 할복자살 하기로 했다.
일본의 할복에는 스스로 배를 가르는 사람과, 그가 느낄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목을 자르는 카이샤쿠가 있고, 모리타가 그 역할을 하기로 헀었다.
하지만 그는 유키오가 할복하는 모습을 보고 곧 자신도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공포감에서인지 유키오의 목을 제대로 내려칠 수 없었다.
그래서 유키오는 바로 죽지 못하였으며 본인의 배를 가른 뒤 내장을 꺼낼 때까지 살아있었다.
결국 유키오와 모리타는 긴 고통을 겪으며, 지켜보던 검도 유단자의 칼 끝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그가 죽은 뒤 이 사건은 일왕의 귀에까지 들어갔으며, 일왕은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던 까닭에 다른 나라들로부터 시선이 곱지 않고 일본 왕실의 권력도 명분만 유지할 뿐이다." 라며 불쾌해했다고 한다.
대다수의 일본 국민들은 극단적인 그의 행보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유키오의 장례 이후 그의 유골함이 도난되었다.
같은 시기에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을 벌이던 김지하 시인은 <아주까리 신풍>이라는 시를 지어 미시마의 자살을 풍자했다.
아주까리 神風(자살특공대) - 三島由紀夫(미시마 유키오)에게
별것 아니여
조선놈 피 먹고 피는 국화꽃이여 -- 국화(벚꽃과 함께 일본의 國花)
빼앗아 간 쇠그릇 녹여버린 일본도란 말이여
뭐가 대단해 너 몰랐더냐
비장처절하고 아암 처절하고말고 처절비장하고
처절한 神風도 별것 아니여
조선놈 아주까리 미친 듯이 퍼먹고 미쳐버린
바람이지, 미쳐버린
네 죽음은 식민지에
주리고 병들어 묶인 채 외치며 불타는 식민지의
죽음들 위에 내리는 비여
역사의 죽음 부르는
옛 군가여 별것 아니여
제멋대로 불러대는 미친 미친 군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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