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범 니시구치아키라
일본 구마모토 현 타마나시에 있는 입원사라는 절에서 가족들과 함께 평온한 삶을 살아가던 후루카와. 말이 절이지 이곳은 주지인 후루카와가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그는 가끔 교도소에 방문해 교화연설도 하고 억욿라게 죄를 뒤집어쓴(엔자이) 이들을 지원하는 구호활동을 하던 인물로 활동자금과 더불어 아이들이 자람에 따라 여러모로 돈이 들어갔기에 항상 그는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살아있는 한 구호활동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였습니다.
가끔 지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그의 집에 어느 날 한 남성이 방문합니다.자신을 변호사라고 소개한 남성은 A라는 의뢰인이 많은 자금을 지원해주겠다고 말했다며 후루카와에게 접근했습니다. A라는 이름을 연하장에서 본 기억이 있던 후루카와는 고맙다고 말하며 남성을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오랜만에 온 낯선 이의 방문에 호기심 많은 후루카와의 차녀 루리코는 남성을 몰래 훔쳐보다가 놀라고 말았습니다. 통학 중 보았던 지명수배자 전단에 있는 니시구치 아키라라는 남성과 방 안에 있는 남성이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죠.
1963년 10월 18일
일본 후쿠오카 현의 한 산길에서 두 남성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둘은 담배전매공사의 동료직원으로 그날은 마침 수금 날일 함께 나갔는데 거래처에서 돌아오는 도중 누군가에게 봉변을 당한 것입니다. 그들이 수금해오던 현금 27만엔, 한화로 약 280만원을 갖고 도주했던 범인.
목격과증언 등을 통해 경찰은 인근에 살며 사건 발생 뒤 자취를 감춘 니시구치 아키라의 범행이라 단정지으며 그를 전국에 지명수배 했죠. 중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견디지 못해 중퇴하고 집에 틀어박혀 살다 절도,사기를 반복해 교도소를 드나들었던 아키라.
성인이 된 뒤 결혼해 3명의 아이까지 있었지만 가정을 돌보지 않고 일본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1963년까지 절도,사기죄로 전과4범이 됐던 그는 2명을 살해한 죄로 전국에 지명수배가 내려진 막장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10월23일 그는 경찰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를 받고 이틀 뒤 경찰은 세토마루라는 연락선에서 누군가 투신자살한 흔적이 있다는 연락을 받게 되고 상의와 신발이 배에 남아있었고 주머니에선 유서가 발견됐지만 해상 보안청은 항로를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아 위장자살이라 단정지었습니다.
그들의 예상처럼 아키라는 당시 하마마쓰시에서 대학교수로 위장에 여관에 숙박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여관 종업원들은 그가 검은테의 안경을 쓰고 코트를 껴입은 채 실제로 인근대학에 전화를 걸어 대학교수인 척 모두를 속였다고 후에 진술했습니다. 그렇게 11월1일까지 인근 지역을 돌아다니며 강도질과 더불어 여성 2명을 살해하고 귀금속을 빼앗아 도주했던 아키라.
22일에 일본 경찰청은 그를 '중요지명피의자'로 등록하고 특별수배를 결정했습니다. 일본은 재범 우려가 있는 흉악범들에 한해 '중요지명피의자' 로 등록하는데 당시 아키라는 5번째로 등록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에서도 그는 여전히 일본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기를 치고 다녔습니다. 심지어 살해도 저질러 그의 손에 5명의 피해자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변호사로 위장해 사기를 치고 다니던 아키라는 1964년1월2일 입원사라는 절에서 후루카와를 만났고 거기에서 루리코에게 정체가 들통 났습니다.당시 루리코는 같은 반에 동명의친구때문에 아키라의 지명수배전단을 항상 눈여겨보고있었다고 합니다. 루리코는 아키라 몰래 부모님에게 사실을 알렸지만 손님에게 실례라며 되려 혼을 냈습니다.루리코는 언니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지만 언니 역시 동생의 말을 믿지 않았고 결국 루리코는 언니를 지명수배전단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동생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한 언니는 어머니에게 달려갔고 잠시 후 방에서 홀로 나온 후루카와 역시 알게됩니다.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보인다면 아키라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기에 후루카와는 가족의 안전을 확보한 채 경찰을 부를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우선 전화가 없어 직접 경찰서까지 가야하는데 애들이 오가며 어수선했던 모습을 보인 이상 섣불리 움직여선 안됐습니다. 결국 후루카와는 아무것도 모른 척 하며 아키라에게 시간이 늦었으니 하루묵고 다음 날 이야기하자는 말을 꺼냈습니다.
자신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생각한 아키라는 제안을 수락했고 후에 체포된 아키라는 다음날 일어나면 후루카와 일가족을 살해 한 뒤 돈을 갖고 달아날 계획이라었다고 자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녁 11시부렵 방에 불이 꺼지고 후루카와는 아내와 장녀를 경찰서로 보내 상황을 설명토록 했고,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절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경찰청장은 "경찰 12만명의 눈이 한 소녀의 눈을 당할 수없었다"라고 말하며 아키라의 체포에 크게 기여한 루리코에게 감사인사를 전했습니다.
재판에서 검사는 '사상최고의검은금메달챔피언', '악마의부산물' 이라고 말하며 사형을 구형했고 1964년12월23일 후쿠오카지방법원은 아키라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1970년12월11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후에 아키라의 이야기는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소설로 각색됐고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인기배우가 총출동해 각종 상을 휩쓸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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