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

영국 랫클리프 고속도로 살인마

na.rin 2022. 5. 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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랫클리프 고속도로 살인마

 

 

영국 런던을 외부와 연결해 주는 세 개의 도로 중 하나인

랫클리프 고속도로 인근은(과거) 가자 혼란스러운 지역 중 하나.

사람들은 그곳을 지저분한 사업과 어두운 골목이 존재하는 낡아빠진 곳이라 표현했다.

선원들이 주로 찾는 지역이다 보니 거친 다툼이 가끔 일어나기도 했던 곳.

 

29번지에는 옷가게를 운영하는 집주인 티모시 마르와 그의 아내,

어린아들, 그리고 견습생인 제임스와 하녀 마가릿, 이렇게 5명이 살고 있었다.

 

1811년12월7일저녁

티모시는 마가릿에게 굴을 사와 달라 부탁했고 늦은시간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오게 된다.

20분정도 지나 돌아왔을 때 그녀는 현관문이 잠겨있고

불이 꺼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을 심부름 시키고 그들이 자고 있다 생각한 마가릿은 화가 났다.

열쇠도 가지고 나가지 않았던 그녀는 여러번 초인종을 누르며

문을 두드렸고 잠시 후 티모시 아들의 울음소리와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주러 온다 생각함 마가릿은 기다렸지만 집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 울던 아이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던것.

그녀가 문을 두드리는 소란에 이웃주민들이 몰려들었을때도

집안에선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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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사는 머레이는 마가릿에게 사정을 듣자 이상하다는 생각을 가지며 울타리를 넘었고 집의 뒤편을 향한 머레이는 지하로 향하는 뒷문이 열려있는것을 보고 티모시가 실수로 문을 잠그지 않았다 생각하며 안으로 향했다.

지하를 통해 1층으로 올라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사망해 있는 티모시와 그의 아내, 아들, 그리고 견습생 제임스.

머레이는 놀라며 곧바로 현관을 달려가 문을 열었고 밖에서 기다리던 마가릿과 소란때문에 출동한 경찰 역시 사망해 있는 그들을 보게된다.

 

1811년

영국은 공식적인 경찰력이 없었다.

1829년이 되어서야 영국 왕실으 런던에 조직적인 상근 경찰력을 제공했다고 한다.

즉, 범행이 일어난 시기에는 지역 순찰이나 현상금을 관리하는 최소한의 체계를 갖췄던 보안대원뿐이었고 그들은 현장을 보존하거나 수색하는 방법을 배운적이 없는 초보였다.

 

침실에서 범행에 사용됐을 것으로 보이는 혈흔이 묻은 쇠망치가 발견되자 경찰은 범행 도중 마가릿이 오자 당황한 범인이 흉기를 버리고 도망쳤다 생각했다.

실제로 마가릿이 처음 초인종을 누를 때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누군가 집 내부에서 움직이는 인기척이 들렸으니 아마 그때까지 범인은 내부에 있었을 것.

피해자들의 몸에 남은 상처로 보아 결정적인 상처는 날카로운 흉기였는데 초반에 경찰은 티모시가 작업에 사용하는 끌 같은것이라 생각했다 한다.

 

뒷문에는 세개의 다른 발자국이 있었는데 하나는 이웃주민 머레이의 발자국 다른 두개는 각각 다른 이의 발자국이였다.

발자국에는 그날 티모시가 작업했더 톱밥의 흔적과 혈흔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범인의 발자국이 분명했다.

서랍만 열어도 보였을 현금을 범인은 가져가지 않았고 어린아이까지 살해한 것에 경찰은 원한에 의한 범행이라 판단하고 수사를 시작했다.

 

현장에 남아있던 발자국은 선로를 따라 쭉 이어져 있었고 선로 인근에 사는 주민은 몇 분 전에 여러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갔다 증언했다.

경찰은 두명이상의 범인이 연루되어 있는 범죄라 생각해 혹시 티모시가 갱단의 목표가 되진 않았나 조사를 했지만 티모시는 헌신적이고 가정적인 남성으로 주위에 민폐를 끼치거나 돈에 관해 문제가 있던 인물이 아님이 밝혀지자 수사는 난항을 겪게 된다.

 

티모시의 일가의 시신은 가정 내 침대에 안치됐고 대중들에게 그 집에 방문해 그들을 볼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당시 어느 누구도 범죄현장을 보존하거나 죽은이들을 존중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대중들은 스캔들과 이런 범죄를 직접 보고 싶어하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상처도 봉합되지 않은 시신을 보기 위해 런던 지역에서 사람들이 몰렸다.

그런 관행이 있던 곳이었고 그런것이 당연한 시대였던 것

가장 안전해야 할 집에서 범행이 일어난 것이 사람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많은 시민들이 앞다투어 새로운 자물쇠를 달기 시작할 정도였다.

 

사건 발생 12일 뒤인 12월 19일

인근에 있는 81번지의 한 주점에서 두번째 범행이 발생한다.

존 윌리엄슨고 아내 엘리자베스가 운영하던 곳으로 항상 문을 일찍 닫아 주점 치고는 조용한 곳이였다.

그 날 존은 경찰에게 갈색 재킷을 입은 남자가 주위를 서성이며 자신으 주점을 주시하고 있으니 체포해달라고 신고했고 얼마 전 일어난 범죄때문에 존은 수상한 남성이 더욱 두려웠을지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순찰을 하고 있을때 살인자라는 외침이 들려왔고 경찰이 소리가 난곳으로 달려갔을때 이미 같은 소리를 듣고 주민들이 존의 주점으로 몰렸다.

잠시 후 3층에서 한 남성이 매듭을 이은 시트를 타고 내려왓고 사람들은 겁에 질려 두려워하고 있던 남성이 주점에서 하숙을 하던 존 터너임을 알아본다.

상황이 심각하다 생각해 경찰과 주민들은 억지로 문을 열어들어갔고 그곳에서 사망해있는 존과 엘리자베스를 발견한다.

 

티모시일가와 비슷한 상처를 입고 사망해 있는 그들의 모습에 사람들은 동일범의 소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엔 생존자가 있었고 3층에서 잠을 자고 있던 존의 손녀와 범인을 목격하고 탈출한 터너.

존의 손녀는 사람들에게 발견됐을 때도 1층에서 무슨일이 벌어졌는지 모를만큼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했고 3층에서 잠을 자던 터너는 이상한소리에 1층으로 내려가 범인을 목격했고 3층으로 도망쳐 창문을 통해 탈출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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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너는 180cm정도의 키에 약간 발을 절고 있었다 증언했다.

경찰은 주점1층 창문이 하나 열려있고 혈흔이 묻어있는 것으로 보아 범인이 그곳을 통해 도망쳤다 판단했고 범인이 향한장소는 진흙으로 덮인 비탈길이라 옷이나 신발에 진흙이 묻어있으리라 생각했다.

 

용의자들 중 존 윌리엄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두사건의 피해자들을 모두 알고 있고 사건이 있던 날 자정무렵 집으로 돌아왔던 인물이였다.

비록 다리는 절지 않지만 180cm의 키에 주점에 자주 방문한 손님이었던 윌리엄스는 그를 의심하던 룸메이트의 신고로 심문을 받게된다.

 

첫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쇠망치에 적힌 이니셜 j.p는 바다에 나가있는 존 피터슨이라는 선원의 것임이 드러나자 윌리엄스는 더우 의심받는다.

존 피터슨의 쇠망치를 윌리엄스가 자주 사용했다 말한 목격자가 나타났기때문.

두번째 범행이 있던 다음 날 윌리엄스의 옷을 세탁한 여성의 신고도 있었다.

세탁 당시 그녀는 윌리엄스의 옷이 찢겨있고 혈흔이 묻어있어 이유를 묻자 그는 시비가 붙어 싸움을 했다 얼버무렸다고 한다.

게다가 한동안 일을 하지 않아 돈이 없던 그가 두번째 사건이 발생하고 밀려있던 방세를 낸 것 역시 수상했다.

 

두번째 사건에서 집주인의 시계와 현금이 사라졌기에 더욱 의심하며 강도 높은 심문을 하게된다.

윌리엄스는 자신이 전당포에 물건을 맡기고 돈을 받아왔다며 영수증을 보여줬으나 그들은 이를 무시했다.

당시는 혈액에 대한 증거를 처리하는 방법이나 패턴분석법,지문구별법 역시 없던 시기.

그러다 보니 경찰이 할수 있었던 최선은 목격자를 찾거나 범인의 자백을 받아내는것 뿐.

이런 상태에서 윌리엄스는 살인죄로 기소됐고 12월28일에 첫 재판이 열리게 된다.

 

하지만 윌리엄스는 감옥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재판대에 서지 못했지만 진행된 재판에서 그는 결국 유죄를 판결받는다.

 

그가 자신의 스타킹을 가져갔고 다음날 진흙과 혈흔이 묻은 채 들고 왔다 증언한 다른 룸메이트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후에 사람들은 재판부가 아무 죄도 없는 인물에게 죄를 뒤집어 씌어 민심을 달래려 한것아니냐 추궁했고 정확한 물증도 없고 목격자가 발을 절었다 했으나 윌리엄스는 그렇지 않다며 허술한 법체계를 비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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