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에현 나바라시 독포도주 살인사건
1961년3월28일
일본 미에현 나바라시의 쿠즈오 마을의 새 임원 선출 및 친목도모를 위한 모임이 있던 날
공민관에 모여 회의를 마친 뒤 저녁8시 무렵 남성들에겐 청주,
여성들에겐 백포도주를 나눠주며 회장의 건배사와 함께 연회가 시작된다.
음식과 술을 마시며 사람들은 연회를 즐기기 시작했고
잠시 후 회장의 아내가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지는 것을 시작으로 4명의 여성이 덩달아 같은 증세를 보이며 쓰러진다.
곧이어 다른 여성들도 복통을 호소하며 연회는 아수라장이 되고
구급대원이 도착했을때 첫 증상을 보였던 5명은 이미 사망한 상태.
여성들이 보였던 것은 중독증상.
누군가 그녀들이 먹은 음식인 술에 독을 탔음이 분명했고 여성들만 먹은 백포도주..
앞선 5명의 경우 백도포주를 많이 마셔 증상이 빠르게 나타났고 다른이들은 천천히 마셔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조사결과 백포도주에선 TEPP계 농약이 검출됐고 경찰은 당시 백포도주를 운반했던 마을 남성 3명을 집중조사했다.
3일간의 강도 높은 심문 끝에 1961년4월2일
오쿠니시 마사루라는 마을 남성이 자신이 범행이라며 자백한다.
검찰은 오쿠니시가 마을주민과 불륜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이를 아내가 알아채자 모든것을 청산할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발표한다.
사건당일 회장의 집에서 공민관까지 술을 나르게 된 오쿠니시.
동행하던 마을 주민은 깜빡 잊은것이 있다며 되돌아갔고 오쿠니시는 홀로 공민관으로 향한다.
10분 후 마을 주민이 돌아왔고 그때부터 회의오 연회준비를 위해 다들 공민관을 오감 일해 검찰은 이 10분간 오쿠니시가 술에 농약을 풀었닺 주장했다.
오쿠니시 또한 자신이 닛카린T라는 농약을 대나무통에 따른 후 농약병을 강물에 버려 증거를 인멸했다 자백했다.
백포도주에 농약을 따를 당시 뚜껑을 이빨로 땄다는 그의 자백에 검찰은 치열감정을 위해 전문가에게 의뢰했고 전문가 6명 중 3명은 일치,3명은 불일치로 결론을 내렸지만 검찰은 이를 물적증거로 채택한다.
또 다른 물적증거는 없었다.
오쿠니시의 자백고 검찰의 억지 물증만이 남아있는 사건.
이 상태에서 오쿠니시는 강압적 수사에 의해 자백을 강요당했다며 자백을 번복한다.
오쿠니시가 했던 자백 중에 강물에 떠내려가는 농약병을 보았다는 것과 대나무통을 품안에 갖고 있었다는 내용이 그의 자백번복에 힘을 실어 주었다.
농약병의 경우 그가 버렸다고 말했던 강물에 동일 종류의 병을 수십 차례 버려본 결과 모두 가라 앉았던 점이 자백내용과 일치하지 않았고 대나무통의 경우 옷으로 감싸고 있을 시 대나무 성분이 옷에 남아있어야 하는데 그가 입었던 옷에서는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던 것.
1961년12월23일
지방재판소는 치열 감정의 증거가 불분명한 점, 오쿠니시를 비롯해 마을주민들의 진술이 지속적으로 번복되는 점을 바탕으로 무죄를 선고했으나
1969년9월10일
고등재판소는 원심판결을 뒤집고 오쿠니시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렇게 오쿠니시는 사형수감방에 가히고 1973년부터 2013년까지 8번의 재심청구를 신청했지만 항상 기각당했다고 한다.
그 사이 오쿠니시를 지지하는 일본변호사연합회는 그를 구명하기 위해 사건을 파헤쳤다.
그들은 검찰이 제출한 치열감정사진이 날조됐다는것을 알아내고 백포도주에 들어있던 농약이 닛카린T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실제로 닛카린T는 TEPP계열은 맞지만 색이 진한 붉은색으로 백포도주에 섞을 경우 색이 변해 연회에 참석한 이들이 알아차렸을 것.
그렇게 재심이 결정되나 싶었지만 고등재판소는 증거에 대해 의심을 가질 부분이 없고 피고의 자백은 신뢰성이 높다는 입장을 유지하며 재심취소결정을 내린다.
2005년5월15일
오쿠니시는 9차 재심청구를 했지만 그 해 10월4일 폐렴으로 사망하면서 자동 기각된다.
엔자이.
원죄라는 듯으로 일본에서는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라는 시사용어로 쓰인다.
일본 형사소송법 제336조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지만 일본의 유죄판결률은 99%가 넘는다고 한다.
심문과 재판 전 구금은 일본의 유죄판결률이 높은 이유이기도 한다.
형사재판에 대한 다수의 유죄판결은 자백에 근거하는 것 또한 그렇다.
일단 체포되면 용의자들은 보통 경찰당국의 통제 하에 23일까지 구금가능하며 멜폐된 공간에서 장기간 심문을 받을 의무가 있다.
오쿠니시는 자신이 무죄라는 것을 끝내 인정받지 못한채 눈을 감았지만 유가족들고 일본변호사연합회는 이를 증명하기 윟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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