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

1% 상류층 집안 아가씨들이 껴안고 몸을 던진 사건

na.rin 2022. 2. 2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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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경성(지금의 서울) 동덕여고보에 재학 중인 17살 김용주

종로에서 큰 서점을 운영하는 아버지 덕분에 유복하게 자란데다가 공부도 뛰어나게 잘 하고 야무져서 동급생들에게 인기가 많았음

그 때문에 용주를 며느리로 노리는 집안도 많았지만 그녀의 꿈은 오직 공부를 끝마치고 사회에 기여하는 신여성이 되는 것

 

그러나 용주의 아버지는 그런 용주가 탐탁치 않았음

빨리 혼인시키려고 부잣집 아들 심종익과 혼사를 맺음원래 여학교 졸업 후 결혼하기로 맺어져 있었으나 손자 며느리를 빨리 보고 싶다는 심종익의 할머니의 강권으로 용주는 동덕여고를 자퇴하고 억지로 결혼하게 됨 김용주는 울며불며 아버지와 학교에게 호소했으나 세상은 용주 편이 아니었음 결국 억지로 혼인함

 

 

그러나... 귀하게 자라며 공부만 하느라 집안일이라곤 한 번도 해본 일이 없는데 갑자기 부잣집 큰살림을 떠안고 보니 하루라도 실수를 하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없었던 용주

시어머니, 시아버지 눈치 보는 것으로 모자라 시할머니 눈치까지 보며 살려니 한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음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 심종익은 한량이었음 밖으로만 나돌고 힘든 시집살이로 고생하는 용주를 본 척 만 척 함

거기다가 일본으로 훌쩍 유학가버림 혼자 남겨진 용주는 하루하루가 괴로웠음힘들어하던 용주

이듬해 봄 용기를 내 시부모에게 복학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함 시부모는 내키지 않았지만 혼자 남은 며느리가 신경쓰였음 결국 허락함너무나 행복했던 용주

 

그러나

“김용주는 다시 살아날 희망에 부풀어 학교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깊은 어둠 속에서 겨우 햇볕을 찾은 듯한 기쁨을 안고 총총이 교문을 두드렸다. 옛날 담임선생님과 동무들은 모두 그녀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그러나 이번엔 인정을 초월한 반석과 같이 차고 엄격한 학칙이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기혼자는 입학을 불허함’

 

새로운 희망에 빛나던 교문은 금단의 동산을 지키고 서 있는 시꺼먼 무쇠대문처럼 그녀 앞에서 굳게 닫혀버리고 말았다. 김용주는 이제 달건 쓰건 돌아오는 운명을 아무 반항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깨끗하게 단념하고 다시 규방으로 돌아갔다.”

(‘철로의 이슬 된 이륜의 물망초 3’, ‘조선일보’ 1931년 4월13일자)

결혼했다는 이유로 복학을 거부당하고 다시 깊은 안채에 갇힌 용주. 돌아온 남편도 총명한 용주를 거부하고 홍등가를 헤맴

공부해서 어엿한 사회인이 되고 싶었던 한 여성의 꿈은 이렇게 쓰러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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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옥임의 아버지 홍석후는 제중원의학과(훗날의 세브란스병원의학교) 제1기로 졸업한 조선 최초의 국내파의사.

자신과 음악가인 동생 홍난파의 영향으로 홍석후의 가정은 지극히 명랑하고 쾌활한 미국식 ‘모던 가정’이었음.홍옥임은 피아노까지 갖춘 자신의 서재가 따로 있었고 (당시 파아노는 웬만한 집 한 채 값 이상), 일본 잡지를 보다가 사진 속의 할리우드 여배우가 찬 시계가 마음에 들기라도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어이 사고야 말 정도로 사랑받았고 부유했음 그런데 그런 옥임에게는 좀 별난 취미가 있었음홍옥임은 어디서고 어여쁜 소녀를 보면 당장 금반지 한 개를 사서 선물하고 연서(戀書)를 써 보냈음. 옥임은 동성에게 더 깊은 감정을 느꼈던 것.그러나 커감에 따라 이성에게도 호감이 생긴 그녀. 옥임은 결국 주선으로 만난 세브란스 의사와 교제하게 됨 그때 그녀의 집안에 우환이 생김당시 경성에서 ‘원동 재킷’이라 불리우던 허영과 사치의 대명사 김화동

젊은 그녀와 노인이던 옥임의 아버지가 연인 관계가 된 것

이 사실은 경성에 빠르게 퍼져나갔고 옥임은 사랑하는 아버지에 대한 절망과 분노를 느끼고 그런 그녀를 연인도 떠나감. 옥임은 심한 우울증을 겪음남편과 아버지에게 배신당한 두 여인

그들은 우연히 만나게 됨

우정으로 시작한 인연이 사랑이 되어 서로 매일 매일 각자의 집을 드나듬

 

두 사람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추악한 현실과 허무한 인생에 대한 절망은 커져만 감 홍옥임은 친구들에게 “차마 죽어버리려 해도 아버지의 명예와 나밖에는 동정해줄 사람이 없는 김용주가 가여워서 그러지 못한다”고 말함

그리고 옥임과 용주는 기어코 죽음을 계획함김용주는 자정이 가까운 시간 마지막 전차를 타고 한강으로 향함 전차에서 내린 두 여인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강변으로 내려감

두 여인은 괴로운 세상에서 벗어날 유일한 도피처로 죽음의 길을 선택한 것

 

초봄 차가운 물살이 두 여인의 목 밑까지 차올랐을 때 한 발짝만 더 내디디면 덧없는 이 세상과 작별하는 순간, 강변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더니 배 한 척이 다가옴

두 여인이 물에 빠진 것을 보고 누군가 급하게 노를 저어온 것. 구조를 받은 두 여인은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고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돌아옴

 

 

첫 번째 자살 시도에 실패한 두 여인그녀들은 4월 안으로 죽어버리기로 다시 결심

그대신 남은 한 달 동안 원 없이 놀아볼 생각으로 밤낮없이 공원과 극장을 돌아다님.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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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4월 8일, 이화여전 음악과 신입생 홍옥임은 그날 따라 무척 행복해 보였다. 수요일이었음에도 학교에 가지 않고 아침부터 몸단장을 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스물한 살 탄력 있고 발그스름한 두 뺨에 미쓰꼬시 백화점에서 사온 ‘코티(Coty) 분’까지 바르고 나니 웬만한 여배우와 비교해도 빠지지 않을 만큼 미모가 빛났다.

 

 

“얘 학교 안 가니?”

“오늘은 수업 없어요.”

 

홍옥임은 어머니의 질문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옷장에서 옷이란 옷은 죄다 꺼내 옷맵시를 맞춰보았다. 걸쳤다 벗기를 몇 차례 반복한 끝에 새로 산 실크 양장을 골라 입었다. 얼마 후 김용주가 집으로 찾아왔다. 김용주는 시집간 지 3년이 지난 주부였지만, 그날따라 블라우스와 스커트 차림이었다.

 

“엄마,우리 놀러 나가요.”

 

“아니 점심때 다 됐는데 밥이나 먹고 가야지.”

 

“나가서 먹을 게요. 우리 바빠요.”

 

 

 

 

1931년 4월8일 오후 4시, 세련된 양장을 차려입은 20살 전후의 신여성 두 명이 영등포역에서 하차했다. 두 손을 꼭 잡은 두 여인은 마치 소풍 나온 소녀들처럼 행복해 보였다.

 

 

“얘, 인천 방향이 어디니?”

 

 

키가 조금 큰 여인이 지나가는 꼬마에게 10전짜리 백동전을 쥐어주며 물었다. 꼬마는 난데없는 횡재에 얼떨떨해서 손가락으로 서쪽을 가리켰다. 두 여인은 꼬마가 가리킨 방향으로 철길을 따라 걸었다. 지난밤 때늦은 봄눈이 내려, 철로 양편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난 개나리와 진달래 꽃잎 위에는 눈이 살포시 얹혀 있었다. 두 여인은 이채로운 봄 정취에 취해 두 손을 꼭 잡고 마냥 즐거워하며 걸었다.

 

 

40분 남짓 걸었을 때, 멀리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질주하는 열차가 보였다. 두 여인은 서로 마주보며 생끗 웃었다. 열차는 점점 다가왔지만, 두 사람은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해맑게 웃으며 그냥 걸었다.

 

 

오후 4시45분, 이들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질주하는 열차를 향해 몸을 날렸고, 인천발 서울행 제428호 열차는 영등포역을 2km 남겨두고 급제동을 걸었다. 열차가 내뿜는 굉음에 묻혀 비명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두 여인의 몸은 쇳덩이에 부딪혀 갈가리 찢겨 나갔지만,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도 꼭 잡은 손만은 놓지 않았다.”

(‘철로의 이슬 된 이륜의 물망초 5’, ‘조선일보’ 1931년 4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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