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

후쿠야마 강도 살인사건

na.rin 2022. 4. 26. 11:25
728x90
반응형
SMALL

후쿠야마 강도 살인사건

가석방이란?
징역 또는 금고형을 받고 수형 중에 있는 사람이 그 행장이 양호하고 개전의 정이 뚜렷하여 나머지 형벌의 집행이 불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일정한 조건으로 임시로 석방하는 제도

우리나라는 무기징역으 경우 20년, 유기징역의 경우 형기의 3분의1을 경과하면 수감자는 가석방 신청을 할 수 있지만 수감자의 죄명, 행장 등 여러조건에 딸 달라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가석방된 이들은 평소 행실을 조심하며 다시 사회의 구성원을 돌아가기 위해 조용히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가끔 과거 버릇을 고치지 못해, 혹은 변하지 않는 사람이라 가석방 기간에도 사고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


1953년1월1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서 태어난 나시야마는 아버지의 병환으로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일을 시작했다.
직업 훈련소에서 목수 기술을 배운 뒤 견습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모난 성격 탓에 항상 사람들과 자주 실랑이를 벌이고는 했다.
1년 좀 넘게 일했을때  결국 사장님의 아내와 싸우고 퇴직한 뒤 한 운수회사에 취직했던 니시야마.

지게차 운전사로 일하던 그는 1972년에 경륜과 경마 등 여러 도박에 빠지게 된다.
처음에 초심자의 행운인지 생각보다 많은 돈을 땄지만 도박이란 하면 할수록 돈을 잃게 되는 구조라 날이 갈수록 그의 주머니는 비어갔고 월급은 물론 지인에게 빌린 돈까지 모두 도박으로 날림 많은 빚을 지게 되고 회사 거래처에서 카메라를 훔치다 체포되기도 했다.

한 지인이 그에게 돈을 빨리 갚아달라 했을 때 니시야마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도박으로 크게 한건해서 모든 빚을 갚자'라는 생각을 했다.

1973년10월
예전부터 가족과 친분이 있던 여성A에게 돈을 빌려 한방에 빚을 갚겟다는 허황된 꿈도 잠시 니시야마는 하루도 안돼 빌렸던 돈을 도박으로 모두 탕진했다.

밎을 갚아야 할 날은 계속 다가오는데 돈은 없고 다른 이에게 빌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던 그는 a를 살해하기로 마음먹는다.

10월25일
돈을 갚겠다며 A의 집에 찾아간 니시야마는 그녀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부엌에 있던 칼을 들고 돈을 내놓으라며 협박했다.
A에게 현금 5만엔, 한화로 대략 5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빼앗은 그는 그녀를 찌른뒤 통장과 인감이 든 가방을 들고 도주했고 A가 즉사햇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당시 그녀는 살아있었고 숨지기 전 범인이 니시야마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지명 수배되며 도망자의 삶을 살던 니시야마는 12월에 누나네 집을 찾아갔고 가족의 설득 끝에 자수한다.

728x90


1974년4월
야마구치 지방법원은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니시야마는 항소했지만 9월에 기각되며 감옥으로 갔다.
복역 중 태도가 성실하고 매형이 신원보증인이 되어 생각보다 빨리 가석방될 수 있었다.

1989년7월
가석방되어 지인의 일을 도왔던 니시야마는 여전히 도박을 끊지 못하고 돈이 생기면 파친코로 날리는 생활을 하던 그는 어느날 누나에게 아파트를 살 수 있게 보증을 서달라고 한다.
앞으로 정신차리고 성실하게 살것이라는 동생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누나는 결국 그를 도와주었고 니시야마는 매형이 경영하는 회사의 배관공으로 취직까지 했다.

그는 수감 중 운전면허 딸 때 만났던 여성과 동거를 시작하며 1990년에는 결혼까지 하며 약속대로 성실한 삶을 사는 듯 보였은 주말에 잠깐 숨을 돌리기 위해 갔던 파친코에 다시 빠져들어 결국 모아둔 돈을 순식간에 날리며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부업체까지 손을 뻗었던 그가 빌린돈은 한화로 수천만원에 달했고

어머니가 그 중 천만원을 갚어주었으나 여전히 파친코를 드나들었다.
그러던 중 매형이 일정때문에 거절했던 공사를 몰래 받아

 돈을 가로챘던 니시야마는 파친코로 날려먹고 결국 해고당했다.

다른 회사 배관공으로 들어간 니시야마는 1992년1월에 교도소에서 

친했던 이의 소개로 쿠로얌 아키라라는 남성을 만나게 된다.
절도와 사기로 9년을 넘게 수감생활했던 아키라와 만나

 친분을 쌓은 니시야마는 그와 함께 도박원정을 다니며 더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1992년 초
퇴사한 뒤 차(tea) 방문판매를 시작했던 그들.
그들은 각자 마지막이라며 돈을 빌린 뒤 야마나시현에서 차를 팔러다녔으나 생각보다 판매량은 저조했고 니시야마의 누나로부터 지인들을 소개받아 차를 팔러 다녔던 그들을 불쌍히 여겨 차를 사주었던 87살의 나이토라는 여성.
당시 나이토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를 병원까지 데려다주며 친해졌다.

하지만 그의 친절이 차의 대량판매로 이어지진 않았고여전히 도박에 빠져있던 니시야마는 한화로 약 6천만원에 해당하는 빚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이 없냐는 니시야마의 질문에 강도질이라는 한심한 답을 내놔던 아키라에게 자신이 가석방중이라 그런짓을 했다가 걸리면 다시 감옥으로 돌아간다며 이왕 하는거 소액말고 크게 한탕 하자고 말했다.

혼자사는 돈많은 노인을 노리자는 생각에 그들은 자신들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나이토를 떠올리고 1992년3월28일 저녁 7시에 나이토으 집에 방문했다.
컵라면에 넣을 끓인 물 좀 얻을 수 있냐는 그들을  나이토는 방으로 안내했고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들은 집안을 뒤졌다.

예금 통장을 찾았으나 생각보다 낮은 잔액에 아키라는 그만두자 했지만 니시야마는 그녀가 오면 확인할 수 있다며 잠시 기다리라 했다.
그는 끓는 물을 가지고 온 나이토에게 어려운처지라며 돈을 빌려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예전 자신을 병원까지 태워다 준적도 있고 지인의 소개로 만났기에 나이토는 알겠다며 한화로 약 130만원을 빌려주었다.
이를 본 니시야마는 그녀가 큰돈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확신했고 좋은 온천에 데려다 준다는 거짓말로 그녀를 차에 태웠다.

 

후쿠야마 방면에는 남에 눈에 띄지 않는 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니시야마는 차를 몰았고 한 숲에 도착해 나이토를 내리게 한뒤 숲안쪽에 좋은 온천이 있다고 말했던 그들은 나이토를 교살한 뒤 벼랑 아래로 유기했다.

그녀의 집으로 돌아와 집안을 뒤졌지만 예상과는 달리 돈이나 돈이 될만한 물건들은 거의 없었다.
우선 집안에서 훔친 통장으로 돈을 뽑으려 했지만 대리인의 서명이 요구됐기에 그들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얻은 것 하나없이 살인자가 된 아키라는 죄책감에 빠져 자수하려 했으나 니시야마는 자신은 절대 교도소에 돌아가기 싫다며 그를 설득해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돈이 필요했던 니시야마는 결국 나이토의 대리인으로 가장해 3주동안 그녀의 통장에서 한화 약 3백만원을 인출했고 그 돈으로 파친코로 향했고 날려먹었다.

1992년4월
나이토의 부재를 이상하게 여긴 시민단체의 신고로 니시야마의 범행은 드러났다. 
경찰은 나이토가 실종된 뒤 그녀의 통장에서 돈이 인출된 것과 인출했던 이가 니시야마라는것을 확인했고 중요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던 중 5일만에 그는 모든 범행을 자백했다.
아키라 역시 공범으로 체포됐고 그들의 안내로 경찰은 나이토의 시신을 회수할 수 있었다.

1994년6월
재판에서 검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니시야마에게 사형, 아키라에게는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하지만 히로시마 지법은 사형은 가장 어렵고 무거운 형이며 모든 면에서 사형을 선택할수밖에 없는 경우에만 부과해야 한다며 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은 니시야마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며 항소했으나 1997년2월 2심ㅁ을 맡은 히로시마 고등법원은 1심으 판결이 현행형법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무기징역을 유지했다.

검찰은 양형이 부당하다며 최고 재판소에 상고했고 

결국 1999년11월에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니시야마의 무기징역 선고판결을 파기하고 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2004년4월23일 히로시마 고등법원은 니시야마에게 사형을 선고
2007년4월에 열린 아고심에서 최종적으로 사형을 확정했으나 아직 그의 형은 집행되지 않았다.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