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판즈람은 1900년대 초 악명을 떨친 미국 범죄자.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의 첫 범행은 겨우 12살쯤..
이웃집에 침입해 케이크와 사과를 훔쳐먹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 자루의 권총이었고 그는 곧바로 권총을 주머니에 넣어 농장에서 갖고 놀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의 부모에게 들켜 그저 혼나는 정도로만 끝났지만 추후 그의 범행 행적을 봤을 때 들키지 않았으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1907년 15세의 나이로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취해 행패를 부렸고 부모님은 그런 사고만 치고 다니던 아들을 군대로 보내버린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절도를 하는 등 범죄를 저질러 입대 1년 만에 절도죄로 체포되어 2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석방 후 에도 그는 절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손에 잡히는 물건은 모두 자기의 것이라 생각했고 그로 인해 여러 번 체포되었다.
그는 어느 한 지역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 다녔고 가명을 쓰면서 범죄행위를 저질러 과거 그의 수감 기록을 살펴보면 다양한 이름이 존재했다.
튼튼한 체격과 큰 키를 가진 그는 절도에 이어 남성들을 주로 성폭행했고 기물 파손과 방화에도 연루되었다.
1915년 한 주택에서 절도행각을 벌이다 체포되어 7년형을 선고 받앗으나 3년 뒤 탈옥에 성공한다.
2년 후 1920년 8월 탈옥한 감옥의 책임자였던 윌리엄 하워드의 사무실을 털어 보석과 채권, 45구경 권총을 훔치고 달아났다.
절도 행위를 주로 하던 그에게 권총이 쥐어지자 그는 살인자로 돌변했다.
그는 뉴욕 술집에서 돈으로 남자들을 유혹한 뒤 자신이 훔친 요트로 초대했다.
요트에 도착한 뒤 술을 더 마시게 하여 상대방이 취하면 그들을 강간하고 권총을 사용해 살해한 뒤 롱아일랜드 사운드의 등대 근처에 버렸다.
이런 방식으로 총 10명의 선원들을 죽였고 요트가 좌초되어 요트 살인은 끝이 났지만 새로운 살인이 시작되었다.
아프리카로 잠시 몸을 피한 그는 그곳에서도 범죄행위를 멈추지 않았고 어린 소년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그곳에서 적어도 8명의 사람이 그의 범죄에 희생되었다.
1922년 미국으로 돌아왔고 오자마자 다시 어린 소년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그는 자신의 범죄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증거를 남기지 않아 오래 잡히지 않았고 그렇게 그의 범행은 끝나지 않을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1928년 워싱턴 DC에서 절도죄로 체포되었을 당시 그는 심문 중 자발적을 두 명의 소년을 죽였다 자백했고 이로 인해 25년의 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수감 도중에도 쇠 막대기로 세탁 소장을 때려 죽였고 이로 인해 사형을 선고받는다.
변호사들과 인권 운동가들이 그를 찾아가 사형선고에 대해 항소를 하자 권유했으나 그는 거절했다.
1930년 9월 5일 그는 교수형에 처해졌고 자신의 얼굴에 검은색 천을 씌우려는 사형집행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고 한다.
교도소 묘지에 있는 그의 무덤에는 수감번호 31614만 표시되어 있다.
1938년에 교도관인 헨리 소미는 칼 판즈람의 편지와 수감생활을 기록한 메모를 토대로 책을 완성했고 이를 인쇄해 줄 출판사를 찾았지만 40년이 지나 뒤에야 출간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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