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

시간차 트릭

na.rin 2022. 10. 14.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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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차 트릭

1939년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 태어난 카미야.

대학교수였던 아버지 덕분에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그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평온했던 일상은 엉망이 된다.

아버지가 정치범으로 잡혀가고 어머니는 애인을 만들어 집을 나갔기 때문.

심지어 2년 뒤 어머니는 애인에게 버림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그는 공장에 거주하면서 학교에 다녀야 할 정도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고 고등학교는 졸업했지만 대학 수험에 실패했던 그는 한 음향기기 제조회사에 들어갔으나 3년 뒤 회사가 도산하며 나와야 했다.

두 번의 결혼 그리고 두 번의 사별.

뭘 해도 안되었던 그가 세 번째 아내 될 여성을 만난 건 1985년 11월 10일

이케부쿠로의 클럽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는 리사코가 맘에 들었던 그는 만난 지 6일 만에 그녀에게 청혼했고 자신보다 14살이나 많았지만 공인회계사라며 소개하고 여러 선물공세를 해오는 그의 청혼을 그녀는 수락했다.

3개월 만에 열린 결혼식에 사람들은 둘의 행복을 위해 한자리에 모여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닷 3개월 뒤인 1986년 5월 20일 리사코는 사망한다.

5월 19일 카미야와 리사카는 오키나와 여행을 위해 오키나와현 나하시에 왔고 다음날 그녀의 친구 3명과 합류해 인근에 있는 이시가키섬에 갈 예정이었다.

20일 오전 11시 40분에 예정대로 친구들과 합류한 그들이 섬으로 떠나려는 찰나 갑자기 카미야가 급한 일이 떠올랐다며 오사카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신경 쓰지 말고 4명이 재밌게 놀라고 말했던 카미야.

그는 헤어지기 전 건강에 좋은 비타민이라며 알약을 아내에게 건넸고 그녀는 별 의심 없이 그 약을 먹었다.

 

13시 30분경 그녀는 오한과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졌고 대량의 식은땀과 함께 마비 증세를 보였다.

친구들이 119에 신고해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상태는 악화되어 결국 15시경 사망했다.

 

병원 측에선 그녀의 죽음이 단순 병사가 아니라 판단해 경찰에 신고했고 친구들은 카미야에게 전화해 리사코의 죽음을 알렸다.

경찰은 그녀를 진단했던 의사의 조언을 받아 카미야에게 부검을 제안했고 처음엔 난색을 표하며 거절했지만 경찰의 설득으로 부검을 승낙했다고 한다.

 

부검을 맡은 오토 교수는 리사코의 사인이 급성 심근경색이고 심장에서 작은 울혈을 발견했지만 다른 병적인 이변은 없다고 진단했다.

급사로 이어질 뚜렷한 증상이 없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오노 교수는 혹시 몰라 그녀의 혈액을 따로 보관해 두었다.

부검 결과에서 별다른 소견이 보이지 않자 경찰은 돌아갔고 그 뒤 카미야는 장례절차를 서둘렀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리사코의 친구들은 그가 그녀의 죽음과 연관이 있을 거라 의심했다.

특히 헤어지기 전 그가 건네준 약이 뭔가 의심스러웠던 친구들은 경찰에 이를 알렸지만 경찰은 만약 그것이 독극물이었다면 곧바로 반응을 보였을 것이고 하다못해 부검 시 밝혀졌을 것이라며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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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언론에 리사코의 죽음을 호소했고 몇몇 언론사가 관심을 보이며 이상한 점들이 포착되기 시작한다.

 

우선 리사코의 사망보험금으로 카미야가 받게 되는 금액이 1억 8,500만 엔, 한화로 18억 원이 넘는 금액이었는데 6개월이라는 단시간에 이 정도의 보험금을 받으려면 매달 나가는 보험료가 꽤 많았을 것이다.

카미야는 본인을 공인회계사라 말하고 다녔지만 사실 그는 공인회계사가 아니었다.

이는 리사코의 장례식에 그의 지인이 아무도 안 오고 그의 앞으로 온 헌화 역시 존재하지 않는 회사라는 것을 알게 된 언론이 밝혀낸 사실이었다.

부담되는 보험료를 내면서까지 그녀의 생명보험금을 유지했고 6개월 뒤 그녀가 죽었다?

사건의 냄새를 맡은 언론은 더욱 그를 조사했고 과거 그의 아내들의 죽음 역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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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내는 심근경색으로 사망.

보험금은 없었지만 아내 몰래 9년간 사귄 애인이 있었다.

그는 애인과 재혼했고 3년 뒤 두 번째 아내는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하며 당시 1억 원에 달하는 생명보험금을 받았다.

2개월 뒤 세 번째 아내 역시 6개월 뒤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하며 카미야는 18억 원이 넘는 생명보험금을 탈 상황에 놓인 것.

 

이를 알게 된 보험사는 과거 리사코가 신경계 질환 통원 이력이 있었는데 보험 계약 시 이를 통지하지 않았다며 보험금 지급을 보류했지만 카미야는 보험 회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

1심 재판에서 승소하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보험사는 항소했고 2심이 시작되었는데 카미야는 갑자기 소송을 취하했다.

리사코의 사인이 독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오노 교수의 주장 때문.

 

오노 교수가 이를 발표하기까지는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녀의 죽음을 이상하게 여겨 채취한 혈액으로 독극물 검사를 하던 그는 결국 아코니틴이라는 독성분을 발견한 것.

경찰은 카미야가 과거 한 꽃집에서 투구꽃을 69화분이나 구매했던 것을 알아냈고 그의 집을 조사한 결과 방 안에서 아코니틴 성분이 검출됐다.

언론의 이목이 커지고 증거들이 발견되자 경시청은 오노 교수가 갖고 있던 혈액에 대해 정밀검사를 의뢰, 아코니틴뿐만 아니라 미세한 테트로도톡신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카미야에게 1,000마리의 복섬을 팔았다는 어부가 나타나자 경찰은 1991년 7월 1일 그를 살인죄로 체포했다.

 

검찰은 카미야가 아내에게 건넨 알약에 독이 들어있었다 주장했지만 그는 그게 사살이면 시간이 맞지 않는다며 반박했다.

분명 자신과 헤어지기 전 그녀가 알약을 먹었는데 즉효성이 잇는 독이 1시간 40분이나 뒤에 반응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그의 주장.

두 독극물은 즉효성을 가진 독이지만 동시에 체내에 들어가면 서로 독의 효과를 상쇄하는 길항작용이 일어나 독은 순간 반응을 하지 않고 시간이 지난 뒤 테트로도톡신의 독성이 사라지고 아코니틴만 남아 중독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된 오노 교수.

 

이는 카미야의 주장을 완전히 뒤집는 증거가 되었고 결국 1994년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012년 11월 오사카 의료 형무소에서 73살의 나이로 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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