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편력이 심했던 남편
1994년 11월 초, 일본 요코하마시 쓰루미구의 게이힌 운하에서 한 여성이 발견된다.
얼마 안 가 그녀는 실종 신고가 들어온 에이코라는 여성임이 밝혀진다.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던 비닐로 밧줄에 묶인 덤벨이 타살임을 가리키고 있었고 당시 실종 신고에는 에이코뿐 아니라 두 아이도 포함되어 있어 경찰은 운하 일대를 수색했고 며칠 뒤 두 아이 역시 찾을 수 있었다.
경찰은 실종 신고를 했던 그녀의 남편 노모토 이와오를 의심했는데 세 구의 시신에서 발견된 흔적 때문이었다.
에이코의 경우 화장도 하지 않았고 스타킹이나 귀걸이도 없는 상태였고 시신 모두 신발을 신지 않은 상태에서 발바닥이 더럽지 않아 이는 외출하지 않은, 즉 집에 있다 변을 당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때문에 경찰은 노모토를 조사했고 심문 중 그의 오른손에서 작은 상처를 발견한다.
평소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던 그를 의심하며 상처에 대해 추궁했지만 그는 반려견에 물린 것이라 변명했다.
하지만 일본 주요 도로를 주행하는 차의 번호를 모두 기록하는 N 시스템으로 인해 노모토가 유기 장소에 갔던 것이 밝혀지자 모든 것을 자백했다.
1965년 이바라키현 이와이시의 한 농가에서 둘째로 태어난 노모토.
어린 시절부터 총명해 신동이라 불렸던 그는 좋은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쓰쿠바대학교 의학부에 들어갔던 수재였지만 흠이 있다면 여성 편력이 심하다는 것.
1990년 대학 졸업 뒤 연수의가 된 그는 의료인 테니스 동아리 회식에서 간호조무사인 에이코를 만났다.
에이코가 마음에 들자 평소처럼 작업을 걸었던 노모토는 그녀가 이혼녀에 두 아이를 키우고 잇다는 것을 알고도 신경 쓰지 않았고 이혼 때문에 우울해 있던 자신을 보듬어주고 사랑해 주는 그를 에이코는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뒤늦게 애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오히려 그와 동거하며 사랑을 키워나갔고 양다리를 걸친 그와 전혀 헤어질 마음이 없었다.
당시 노모토의 애인은 그가 사귀면서 양다리를 걸친 것이 3번째라 만간 헤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에이코가 노모토의 아이를 임신하며 두 아이를 전 남편에게 보낼 테니 자신과 결혼해달라 매달렸던 에이코.
그녀가 이미 그의 아이를 한번 지웠고 이번이 두 번째 임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 노모토의 애인은 진절머리가 난다며 그를 떠났고 30대 중반까지 미혼으로 자유롭게 여러 여성과 만나고 싶었던 노모토는 그녀의 임신 때문에 결혼을 서둘러야 했다.
1991년 11월에 아이가 태어나자 한동안 가정에 충실했지만 12월에 연수를 위해 타지에 있는 병원으로 가며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자 다시 여자에게 눈을 돌렸다.
1992년 2월 에이코에 들켰지만 그는 자신을 욕망을 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소리를 했다고 한다.
에이코가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할 무렵 그는 다시 가정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줬으나 태어나고 6개월 뒤 새로운 병원으로 전근을 가며 다시 바람을 피웠다.
당시 노모토는 한화로 약 1,000만 원의 월급을 받았는데 그 중 400만 원을 에이코에게 보내고 나머지는 본인이 자유롭게 사용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싸움이 잦았고 말싸움이 거칠어지자 이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이혼해도 상관없다 말하지만 이혼의 상처를 겪어봤던 에이코는 또 그럴 수 없다며 외도는 눈 감을 테니 다음과 같은 규칙을 정했다.
1. 여자를 만들어도 외박은 하지 말 것.
2.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할 것.
3. 자신도 사랑해 줄 것.
1994년 그는 또 다른 병원에서 바람을 피며 외박 규칙을 어기고 말았고 분노한 에이코는 남편의 애인과 만나 헤어지라고 말했다.
그날 애인에게서 아내가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노모토는 아내와는 이혼할 테니 자신을 떠나지 말라고 울면서 하소연했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에이코에게 이혼하자 이야기를 꺼냈다.
에이코는 위자료 10억 원과 매달 양육비로 1,000만 원을 달라고 말했다.
그 해 10월 병원 주체로 여행을 다녀온 노모토가 선물이라며 가져온 값 싼 특산품 과자를 본 에이코는 자신에게 애정이 없냐 소리쳤고 그가 애정도 없고 이혼도 할 수 없어 같이 사는 거라고 답하자 격렬한 말다툼을 벌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저녁을 먹은 노모토는 아이들을 재우고 본인은 2층 소파에서 잠들었는데 다음 날인 10월 29일 새벽4시무렵 같이 자는 게 싫냐는 에이코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둘은 말다툼을 벌였고 화가 난 그녀가 차라리 자기를 죽이라며 목에 밧줄을 두른 뒤 자신을 죽이지 않으면 내일 병원장을 만나 모든 것을 폭로하겠다며 외치자 자신을 파멸시킬 작정이라 생각한 그는 그녀를 교살했다.
범행 후 '아버지가 살인자라면 불쌍하다.'라고 생각하며 두 아이 역시 살해했고 범행 후 자수 등 여러 생각을 했지만 출근시간이 가까워져 출근했고 점심 무렵 바다에 유기하기로 마음 먹었던 노모토.
10월 30일 그는 신주쿠에 잇는 업소에 들린 후 저녁 11시 무렵 바다로 향했고 그곳에서 비닐로 감싸 덤벨을 달아둔 세구를 바다에 유기했다.
그 뒤 애인과 여행을 예약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을 보냈던 그는 며칠 뒤 아내의 친정에 전화해 그녀가 거기 있냐 물었는데 이는 실종 신고를 늦추고 자신은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려는 잔머리를 굴렸던 것이다.
장모님의 모른다는 대답에 그는 상황 설명한 뒤 실종 신고를 했다.
이미 에이코가 발견됐다는 것도 모른 채...
그의 손에 나있던 상처를 의심했던 경찰은 조사를 통해 범행 당일 그가 운하에 왔다는 것을 밝혀냈고 심문 끝에 자백을 받았다.
검찰은 3명을 살해한 그에게 사형을 구형했지만 1996년 2월 22일 요코하마 지방 법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아마 이런 판결을 받기까지 3천 통이 넘는 병원 관계자들의 감형 탄원서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에이코가 스스로 목을 조르며 자신을 도발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노모토의 진술이기에 어떤 이들은 그가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르고 죗값을 적게 받기 위한 계략이라 말하지만 진실은 그와 그녀밖에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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