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하바라 묻지마 살인사건
2008년6월8일 새벽
일본 어느 한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글
이 글을 본 사람들은 그저 어그로꾼의 글이라생각하며 해볼테면 해보라는 식의 도발로 그를 자극했지만 작성자는 그런 댓글을 무시하며 지속해서 글을 썼다.
가토 도모히로
아키하바라 무차별살인사건의 범인.
12시30분 무렵
가토는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보행자를 친 뒤 맞은편에서 신호를 대기하던 택시와 충돌하는 큰사고를 낸다.
당일은 차 없는 거리, 즉 보행자 천국의 날이었기에 길을 걷던 많은 인파가 있었고 그들은 갑작스러운 사고에 다들 혼란에 빠졌고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단순 교통사고라 생각했을것이다.
사람들은 우선 건널목을 건너던 보행자가 다쳐 소방청에 신고학 충돌을일으킨 트럭과 택시로 다가가 운전사를 구하려했다.
사람들이 트럭에 다가가는 순간 운전석에 있던 가토가 약간의 피를 흘리긴 했지만 멀쩡한모습으로 걸어나왔고 괜찮냐며 다가가는 사람에게 칼을 휘둘렀다.
경찰이 출동하기까지 가토의 범행에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사망자7명, 부상자10명
처음 출동한 경찰도 진압봉을 들었지만 흥분하며 날뛰는 그를 막지못했고 결국 총을 겨누고 나서야 가토는 모든것이 끝났다는 표정을 체포당했다고 한다.
가토도모히로 그는 왜 이런짓을 벌였을까?
가토는 혼슈아오모리의 교외 주택에서 금융기관의 임원인 아버지밑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
초등학교 당시에는 매우 뛰어난 우등생이었고 소위 말하는 엄친아.
중학교 때는 테니스 클럽의 회장을 하며 다방면에 재능을 보였던 가토.
그런 그는 당연하다는 듯 명문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그곳에서부터 무언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모두 뛰어난 인재들만 모아둔 곳이기에 중학교때까지 최상위 성적을 유지하던 그는 첫 시험에서 360명 중 300등을 하게된다.
명문고 꼴찌가 평범한 고등학교에 가면 상위권에 속한다는 말이 있듯이 가토의 성적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가토의 어머니는 아들의 성적표를 받고 분노하며 성공한 삶을 위해선 뒤처지면 안된다며 그를 훈계했다.
어머니는 가토를 매우 압박했고 갈수록 그는 정신적으로 내몰리기 시작한다.
성적이 안좋은 날에는 정신을 차려야한다며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얇은 옷을 입고 몇시간동안 밖에 서있도록 지시하고 쪽지시험에서 오답이 나온날은 음식조차 앉아서 먹을자격이 없다며 바닥에 흘린 것을 주워먹도록 던져주었다.
이런 정신적핍박속에서 당연히 성적은 더 떨어지고 훗카이도대학으 입학시험에 떨어지며 그의 인생도 떨어졌다.
어머니는 대학진학에 실패한 가토를 무시하고 그의 동생과 비교하던것 마저 그만두었다.
가토 역시 모든것을 체념한듯 전문대학교에 진학하며 자동차정비공으로 훈련받았다.
그런 그의 안식처가 된 곳은 한 커뮤니티 사이트
범행전까지 그가 사이트에 게시한 글은 무려 1,000개가 넘었고 자신의 인생과 부모님들의 양육에 대한 비판을 글로 쓰며 스스로 위안삼았고 다른이들에게 위안받고 싶어했다.
대학졸업 후 가토는 자동차부품공장에서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사건발생 3일전인
6월5일
출근 당시 자신의 작업복이 사라진것을 발견.
직장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던 것.
가토는 사라진 작업복을 찾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비웃고 있는 동료들에게 욕을 한 뒤 작업장을 뛰쳐나왔다.
후에 전문가들은 이 일이 그의 범행에 트리거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가토는 게시글을 작성하고 모든 인생을 끝내고자 마음먹었고 6월8일 안될짓을 저질렀다.
가토는 심문에는 협조적이었으나 피해자들에게 사과는 하지 않고 때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흐느껴 울기도 했다.
범행 직전 핸드폰의 모든 연락처와 통신 기록을 지운것을 물어보자 주변사람들을 성가시게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했던 가토.
이후 가토는 경찰이 자신을 주목하고 한편으로는 막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터넷에 범행예고게시글을 올렸다고 진술했다.
'산다는 것에 지쳤고 세상이 싫어졌습니다. 살인을 위해 아키하바라에 왔습니다 .누구라도 좋았어요.' 라며 눈물을 흘렸다
2010년1월28일
도쿄 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가토는 심문 당시 피해자들에게 아무런 사과를 하지않았던 자신의 태도를 반성한다 말했다.
공판에 앞서 비공개로 열린 가토의 부모에 대한 심문에서 어머니는 과거 자신이 정식적으로 아들을 압박했던 점을 인정하고 아버지는 왜 말리지 않았냐는 질문에 자신은 자식교육에 관여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2011년3월24일
가토는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9월25일 변호인은 정신장애를 이유로 상고했으나 2015년2월2일 사형이 확정되면서 지금까지 사형수감방에 수감되어있다.
이 사건 이후 아버지는 직장에서 해고당했고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며 외할머니는 충격으로 사망, 동생 역시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며 유서를 남기며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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