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

싱가포르 불타는 감옥 풀라우 세낭섬

na.rin 2022. 4. 21. 11:54
728x90
반응형
SMALL

 

싱가포르 불타는 감옥 풀라우 세낭섬

 

싱가포르 남부 해안으로부터 약 13km 떨어져 있는 풀라우 세낭섬은 여의도 면적에 대략 1/3쯤 되는 작은 섬인데 한때 '불타는 감옥'이라 불렸다.

 

1959년

싱가포르 정부는 폭력조직과 비밀 사회를 뿌리 뽑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우리나라의 범죄와의 전쟁과 같은 조치로 인해 저항하는 조직원들과 충돌이 일어나며 매주 수십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정부의 무력 앞에 조직들은 하나둘 사라졌고 많은 조직원들이 체포되며 넘치는 인원 때문에 교도소는 포화상태가 되고 이런 교도소 과밀현상을 줄이고자 정부는 해결책을 내놨다.

 

무인도에 죄수들을 가둑 섬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하는 대신 섬 개척을 도와주는 육체노동을 시키자는 것이 해결책의 내용.

법좌 질서에 대한 배려가 없는 범죄자들은 일자리 부족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그런 범행을 저지른 것이고 규율 있는 수단을 통해 그들이 변하면 언젠가는 닷 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해결책.

 

 

싱가포르 정부는 풀라우세낭섬을 첫 정착지로 선정하며 아일랜드 출신 교도소 감독관인 다니엘 스탠들리 더튼을 총감독관으로 임명했다.

1960년 5월

다니엘은 50명의 죄수와 함께 풀라우세낭섬을 떠났고 도착 즉시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섬의 개척을 시작했고 삭막했던 섬이 도로, 저수지 , 작업장, 농장, 운동장까지 갖춘 자급자족이 가능한 섬을 변모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섬에선 하나의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었고 불과 3년 만에 죄수들이 320명으로 증가할 정도로 정책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섬에서 유일하게 유럽인이었던 감독관 다니엘은 성선설을 믿으며 변화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주장했던 인물

 

죄수들이 힘든 일을 통해 개혁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무장을 통한 질서유지가 불필요하다며 교도관들에게 무기 제거 명령을 했던 다니엘.

그러면서도 그는 법질서에 엄격함을 보여주며 자신의 명령이나 교도소 규제에 도전하는 반항적인 죄수들에게는 강력한 처벌을 내렸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3년 동안 다니엘은 섬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본토에서 섬으로 보내진 죄수들은 다니엘의 허락 없이는 다시 본토로 돌아가기 힘들어 맘에 들기 위해 명령에 따라 아침 7시부터 온종일 일을 해야 했고 고된 노동강도에 죄수들은 다니엘에게 많은 불만을 품었고 그의 지속되는 철권통치를 참지 못하며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만다.

728x90

사건 발생 며칠 전부터 몇몇 죄수들이 요즘 다른 죄수들의 움직임이 불안하다는 제보를 했으나 보고를 들은 다니엘은 웃어넘겼다고 한다.

 

1963년 7월 12일

58명의 죄수가 폭동을 일으킨다.

무장하지 않은 교도관 3명과 다니엘, 4명이 그들을 막기는 역부족.

교도소 정착지 중심으로 화재가 일어나며 모든 건물이 불타올랐고 다니엘은 증원 요청을 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화가 난 죄수들은 교도관 3명과 다니엘을 살해했고 마치 자신들이 타락한 왕을 처치하고 섬을 탈환한 영웅이라도 되는 듯 섬을 탈출하지 않고 파티를 벌였다.

잠시 후 그들은 섬에 도착한 지원군에 의해 체포되고 살인을 저지른 18명은 사형,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린 18명은 징역 3년, 폭동에 동조한 11명은 징역 2년, 휘말렸던 11명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최악의 결과를 낸 실험으로 인해 갱생 프로그램은 중지됐고 이후 풀라우세낭섬은 모든 사람에게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싱가포르군의 사격훈련 등 여러 훈련용 도로만 쓰인다는 풀라우 세낭섬.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