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의 1급 비밀프로그램 "프로젝트코스트"
제네바 선언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의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에, 나의 일생을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한다."
이렇듯 의사란 인류의 건강과생명을 위해 헌신하는 훌륭한 사람들.
하지만 자신의 의학적 지식을 좋지못한분야에 쓰는 사람들이 있다.
"의학은 내 직업이고 전쟁은 내 취미다."라고 말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이하남아공) 심장전문의 바우터바손.
"Dr. Death"라고 불린 그는 국가의 지원을 받고 대량학살을 일으키기 위한 생화학 무기를 연구했던 나쁜인물.
1975년에 발효된 생물독소 무기협약은 제네바 의정서를 보완했다. 이는 모든 종류의 생물무기의 생산과 사용을 금지하는 조약이었지만 화학 무기 협약과는 달리 검증과 감시가 힘들었다. 준수 여부를 감시하거나 실행할 주체가 없었기에 몇몇 국가들은 이를 무시하고 비밀프로젝트를 진행하고는 했고 남아공 역시 그런 국가 중 하나였다.
아파르트헤이트는 17세기 중엽 백인의 이주와 더불어 점차 제도로 확립된 백인과비백인을 구분해 차별하는 남아공의 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을 말한다.
"격리"라느 뜻의 아파르트헤이트가 제도로 도입됐을 때 남아고 수뇌부들은 인종간의 사회적 통합을 중단시키기 위해 거주지를 나누기도 했다.
1981년 남아공의 대통령이었던 피터윌렘보타는 국방부에 "프로젝트 코스트"라는 비밀 프로젝트를 지시했다. 당시 대통령 주치의였던 바우터를 책임자로 선정하고 고위 인사와 과학자, 의사 등 200여명의 전문가를 모집한 "프로젝트 코스트"
처음에는 그들에게 국가의 적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 중심의 연구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반인종차별 운동가들을 무력화시키고 비백인 인구가 증가하는 것을 막는 화학적, 생물학적 수단을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
탄저균이 들어간 담배, 이름 모를 독이 들어간 우유와 물, 알코올 등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물품에 자연스레 섞어 배포하려고 계획했던 그들. 그들은 남아공의 비백인 인구를 줄이기 위한 인종 고유의 박테리아 무기를 합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연구를 진행했다. 실제로 물질의 조달을 위해 4개의 프런트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생화학 무기를 만들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위해 생체실험을 강행했다.책임자였던 바우터의 지시로 200여명에 가까운 나미비아전쟁포로에게 생체실험을 한 뒤 약물(근육이완제)를 투여해 바다에 유기하기도 했다.뇌 기능을 영구적으로 손상할 수 있는 독성물질에 관한 연구 등 의사, 아니 인간으로서는 해서는 안될 연구를 했던 그들. 후에 "프로젝트 코스트" 에 참여했던 어떤 이는 법정에서 다음과 같은 증언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증언들로 인해 프로젝트 코스트와 관련된 바우터의 범죄가 밝혀지기도 했지만 그는 끝까지 군중 통제 방법을 연구했을뿐이라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군인이라 지시를 받았기에 실행했을뿐 자신이 했던 모든 일이 틀리지 않았닥 주장했던 바우터.
1950년 7월6일에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서 태어난 그는 의사가 된 뒤 1975년에 입대해 소령으로 승진하며 대통령주치의까지 했던 인물.
1990년대 초 정권이 바뀌며 아프르트헤이트의 종식과 남아공의 대량살상무기프로그램이 중단됐는데 프로젝트코스트 역시 마찬가지였다.비밀 프로젝트였기에 당시엔 알려지지않았지만 내부자들의 고발로 인해 바우터는 1999년에 군복무를 정지당하는 것을 시작으로 죗값을 받아야한다는 남아공국민들의 목소리에 결국 재판대에 서게된다.
1999년10눨4일
229건의 살인, 살인음모,약물소지및밀매, 횡령, 사기, 절도를 포함한 67건의 범죄로 기소된 바우터. 하지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재판을 맡은 검사는 남아공 법원이 나미비아 밖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재판할 수 있는 사법권이 부족하다는 판결을 내리며 재판의 핵심이었던 나미비아 전쟁포로 200여명의 사망과 바우터가 관련됐다느 혐의를 기각했다.
또한 67건의 혐의는 46건으로 축소됐고 그의 범죄를 입증하는데있어 모든 증거와 증인이 기준에 크게 못미쳤다고 판결하며 모든 혐의를 기각했다. 검찰은 판결에 항소했지만 2003년 남아공 대법원은 새로운 재판을 열지않겠다 발표했다.
터무니없는 판결을 본 아프리카민족회의 대변인은 살인자를 보호하는 명백한 사례라며 남아공사법체계의문제점을 지적, 비난하기도 했다.
바우터는 2013년 남아공 보건전문가 평의회에 의해 4건의 비전문가적 행위에 대한 유죄판결을 받으며 마침내 정의가 실현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2019년3월에 가우텡고등법원은 청문회를 주재한 두명의 위원이 편견을 갖고 있기에 징꼐청문회에서 했던 그들의 발언을 철회하라는 판결로 바우터의 손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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